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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생각하며]안승환/내 집에 있는 생불(生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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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생각하며
내 집에 있는 생불(生佛)

안승환 / 한터우리문화연구소 소장, 새교육공동체 시민모임 회장

여인네들은 봄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집안엘 있지 못하고 들썩들썩한다. 답답했다는 조선시대에도 나물캐기란 명분을 걸고 봄의 산판, 들판은 여인네들 세상이 열린다.
하긴 꼼지락거리기 싫어하는 나도 가을만 되면 슬슬 바람기가 일어난다.
지난 가을 논산 밑의 완주라는 곳에 있는 문살채색이 좋고 껄집 짜임새가 색다르다는 쌍계사를 휭하고 돌아본 일이 있었다. 보통날이면 아무도 없는 절간이다. 호젓한 산속, 그리고 단풍에 풀린 산은 인간이 범접하기에는 너무 경건했다. 그래도 그 산속에 비집고 눈꼽만한 터를 잡고 사는 게 절간이다.
그런 절집에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행위 자체가 우리 인간들을 잠깐이나마 모든 욕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종교를 떠난 순수한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항상 고맙다.
빤히 보이는 절간 흙길을 걷는다. 얼핏 그 길 끝자락을 가로질러 가는 여인네가 보이더니 내 길앞을 가로질러가서 미안하다는 몸짓인 것 같은 가벼운 인사짓을 하고 간다. 이런 예절은 옛날에 있었던 것인데 오늘 오랜만에 그를 만난 것이다. 반갑고 그 여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설핏 들면서 건성건성 절간 문살을 보고 휘둘러 약수물을 벌컥거리고는 터벅터벅 내려왔다.
그래도 목이 타는 듯해서 길에서 저만치 비켜 있는 음료를 팔것 같은 조립식 옴팍집으로 갔다. 오십은 슬쩍 넘은 듯한 여인이 “뭘 드릴까요?” 한다. 그녀는 아까 그이였다. 분명하다. 가슴이 펑펑 뛴다(육십이 돼도 가끔씩 어떤 여인을 마주하면 남자는 이렇다). 침을 꼴깍 넘기고 “커피요.” 말도 안되는 주문이다. 이곳 분위기가 그렇고 목이 마르니 당연히 적설차였어야 했다. 그 놈의 벌렁거리는 심장 때문이다.
큰 고목밑에 듬성듬성 큰 돌팍을 의자로 놓아두고 차린 찻집에는 젊은 부인 둘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종이컵에 들고온 여인이 말한다.
“약수로 담근 커피예요.” 담거...? 커피도 술 담그듯이 담나... 우리 말맛이 참 달다.
갑자기 까탈스런 그 여인이 말한다.
“느네들 절간이 그런 곳이 아니야.
절간에서 빌긴 무얼 빌어?
너네 신랑들 신경 더 써주고,
시집식구들한테 눈꼽만한 사랑이라도 더 주란 말이야.
집에 있는 생불은 어쩌고, 산속 돌부처를 섬기고 지랄들이야!
정신차려, 이것들아.”
벌떡 일어나 홱 돌아서며 종종 걸음을 치는 저 여인.
나는 담근 커피를 먹으면서 종이컵 속에 어른거리는 부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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