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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권오순 씨(우강면 송산리)
마음 속 이야기 시로 남긴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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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남부노인복지관 자서전 프로그램 진행
낮에는 호미질 밤에는 바느질 하며 살았던 젊은 날

초등학교까지 가르치면 됐지. 여자애가 무슨 학교냐고 말한 할아버지 말씀을 장남인 아버지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못 배운 한이 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들 하나 딸 일곱을 낳아 기르며 오로지 가정을 위해 살다 보니 90세에 가까운 나이가 됐다. 잘 자란 자녀들과 손주 보는 재미로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이다. 하지만 자꾸만 깜빡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분명 복지관 바자회에서 부채 하나를 샀는데 집에 돌아오니 빈 손뿐이다. 하루는 자려고 누웠다가 손주의 이름이 도통 생각이 안 나 이불 걷고 일어나 앨범까지 펼쳤다. 자꾸만 잊어버리는 기억과 추억을 잡으려 권오순(87·우강면 송산리) 씨는 한 자 한 자 적은 시를 엮어 자서전을 만들었다. 

당진시남부노인복지관(관장 배희선)에서 자서전 집필 프로그램을 진행한 가운데 15명의 어르신이 참여했다. 권오순 씨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의 일생을 담은 시를 써서 자서전을 냈다. 

아버지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
“보는 이 없어도 곱게 핀 민들레/민들레를 보면 옛 추억에 눈물이 맺힌다/우리 아버지가 제일 좋아 하시던 민들레/아버지 닮아 나도 좋아하네”

권 씨의 아버지는 우강면 세류리 출신의 사업가였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가정에서 외동딸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 남 부럽지 않게 살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에게 아버지는 늘 예쁜 원피스를 입혔고,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7살 무렵엔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북 원산에서 잠시 살았다. 그때 아버지가 좋아하던 민들레를 따던 기억이 이 시가 됐다. 권오순 씨는 “아버지 생각이 참 많이 난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원산에서 일을 마친 아버지와 함께 인천을 거쳐 다시 고향 당진에 왔다. 우강초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우등생을 놓치지 않았단다. 하지만 글방을 운영하던 할아버지는 초등학교를 마친 그에게 배움의 기회를 더이상 주지 않았다. 대신 할아버지에게 명심보감을 배웠다. 권 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명심보감 배우기가 그렇게 싫었는데 그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더라”며 “만약 그때 더 배웠다면 시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23살에 만난 남편
공부하기 싫어하는 딸을 위해 아버지는 양재학원(양복 재봉을 가르치던 곳)을 보냈다. 하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해 금방 그만두고, 오래 지나지 않아 남편을 만났다. 

“삼 일 소금 끼니에도 기죽지 않은 우리 부부/ 가난했던 그 시절, 고난도 슬픔도 다 잊고 우리는/ 행복하게 살았지요.”

7살 차이 나는 남편을 만났을 때 권 씨의 나이는 23세였다. 그는 “바삐 사느라 젊었을 때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당시 남편은 군대를 전역한 법대생이었다. 군대 복무 중 홀어머니를 여의고 남은 것이라고는 냉기가 도는 집뿐이었다고. 

권 씨와 결혼한 남편은 장인의 도움으로 대학까지 무사히 졸업하고 교단에 섰다. 한때 자녀들을 두고 신탄진으로 갔을 때는, 남편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배에 자녀들 얼굴을 그려 놓고 사공으로 불타는 산을 향해 노 젓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그는 “그림 아래 ‘이 배는 어디로 가리오’라는 글과 함께 눈물 콧물 쏟아 그려 남편에게 편지를 보냈다”며 “편지를 받은 남편은 바로 당진으로 내려왔다”고 말했다. 

배움의 한 풀어내
남편은 신평고에서 교직 생활을 하고 교감으로 퇴임했다. 그런 남편 뒤에서 권 씨는 밭일이며 살림을 도맡아야만 했다. 낮에는 호미질, 밤에는 바느질을 하며 잠시도 쉴 새가 없었다. 그래도 여덟 자녀 잘 가르치겠다는 일념으로 신세 한탄할 시간도 없이 바삐 지냈다고. 그가 쓴 글 중에서도 “배움에 한이 된 나는 아들 한 명 딸 일곱 명을 낳았다. 손녀 구별 않고 모두 대학과 대학원까지 가르쳤다”고 남겨져 있다.

또 다른 글에는 “배우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아들 1명에 딸 7명을 낳아 기르며 아들딸 구별 않고 다 가르친 것이 내 생전 살아오면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자부한다”면서 “세상을 바로 보나 거꾸로 보나 그 그림 똑같다. 슬프게 사는 자 불행하고, 기쁘게 사는 자 행복하다. 우리 모두 사랑하며 살자”고 적었다.

“요즘 기쁘고 즐겁죠”
순성면 중방리에서 평생을 살다 일흔에 아들 딸들이 칠순 기념해 선물해 준 우강면 송산리 집으로 이사했다. 적적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당진시남부노인복지관을 다니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수묵화반, 도자기반, 우쿨렐레반에 들어가 노년에 배우는 재미를 쏠쏠하게 느끼고 있는 권 할머니다.

어렸을 때부터 쓰고 싶었던 글을 쓰기도 하고, 처음 붓질을 해가며 난도 그렸다. 권오순 씨는 “젊었으면 좋으련만 싶지만 그래도 요즘 기쁘고 즐겁다”며 “자식에게 대우받는 엄마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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