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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수필]김 수 옥/아들은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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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옥
나루문학회 회원

우리 아들은 백수다.
아침 아홉시 반. 나와 함께 남산을 지나 야호대에 오르는 아들아이는 분명 백수다.
마주 오는 아줌마들이 아는 분이건 모르는 분이건 만날 때마다 큰 소리로 “안녕 하세요”를 외치는 일곱 살짜리 꼬맹이는 제 스스로 백수라고 자랑을 막 한다.
일곱 살이라지만 제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통 하나 만큼은 크길래 4월생이래도 자리가 남으면 학교에 보내려 했었다. 그런데 텔레비젼에서 학교 일찍 들어가면 왕따 당한다고 제가 마구 반대해서 결국은 나와 같이 아침마다 야호대에 오르는 백수가 된 것이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백수만도 아니다. 아침 여덟시만 되면 빨간 가방에 피아노 책을 넣고 피아노학원에 다녀 오기도 하니 말이다.
내맘 같아선 태권도학원이든 미술학원이든 보내서 혼자 심심하지 않도록 해 주고도 싶은데 막무가내다.
옆집 성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고 건너편에 사는 진호형이 돌아오고 1층 병호형이 학교에서 돌아와 사총사가 뭉칠 때까지 심심하기는 하지만 학원 가기는 싫다고 한다.
아들아이가 이렇게 된 데는 내 탓이 크지 싶다. 여섯살 때 학원에서 공부 좀 따라 한다고 초등학교 1학년 수학자격증 따기 위해 한두달 동안 공부만 시켰던 것이 학원이라면 고개를 흔들도록 한 이유인 것이 아닐까?
아무튼 요즈음 아들 아이는 백수를 은근히 즐기는 것 같다. 피아노학원에 다녀오면 열심히 연습했다가 친구들이 놀러 오면 아주 작은 음악회를 열고, 엄마를 따라 농협에도 가고 이모네 가게도 가고 시장에도 가고 그러다가 비디오 가게에서 만화영화도 빌려다 보고 밖으로 나가서 신나게 뛰어 놀다가 무릎도 깨어지고…
저렇게 놀기만 하다가 학교 들어가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 되는 마음 없지는 않으나 어쩌면 이 아이가 선택한 백수의 하루하루가 이 아이의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날들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아들아, 너 백수 맞어. 그러니 맘껏 놀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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