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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원통함을 없게 하라
2006년 09월 08일 () 13:01:00 webmaster@mjmedi.com
   
 
조선의 법의학과 《무원록》의 세계

살아있을 때의 일들이 죽은 후에도 남아있는 이에게 연관되는 경우가 참으로 많지만, 그 가운데 살인사건은 말없는 자를 놓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이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억울한 죽음에 이르러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목민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진실이 가려진 사건들을 탐지하는 일이라고 갈파했던 다산의 얘기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옛 사람들에겐 참으로 절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백성에게 원통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조선시대의 살인사건에 반드시 지침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무원록(無寃錄)》이다. 생명이 있었던 인간의 마지막 궤적을 추적하는 일로써, 의학은 이를 합리적이고도 실용적인 모습으로 법적 효력을 지닐 수 있도록 과학적 기법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조선시대 법의학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검시(檢屍) 지침서인 《무원록》은 원래 원(元)나라 왕여(王與)가 1308년에 저술한 책으로 중국 뿐만아니라 조선과 일본에서도 널리 활용되었다. 우리나라는 세종 17년(1435)에 조정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세종은 최치운을 중심으로 한 여러 신하들에게 《무원록》의 해설을 명하였다. 이에 명(明)나라에서 간행된 《무원록》의 중간본을 저본(底本)으로 하고, 송(宋)나라 송자(宋慈)가 지은 법의학서(法醫學書)인 《세원록(洗寃錄)》과 원나라 조일제(趙逸齊)가 지은 법의학서인 《평원록(平寃錄)》등을 참고하여, 세종 20년(1438) 겨울에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완성하였다.

이후 《신주무원록》은 조선시대 검시의 표준서적이 되었으나, 조선의 사회구조가 중국과 다르고 변화하는 현실의 반영을 위해 영조 24년(1748)에 구택규에 의해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이 만들어졌다. 다시 체계를 더욱 완비하고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는 동시에 조선의 변화한 현실을 고려하여, 구택규의 아들 구윤명에 의해 지어졌으니 이것이 바로 《증수무원록대전(增修無寃錄大全)》이다. 이는 그동안 조선에서 누적된 다양한 경험지식과 수사기법 가운데 기록할 만한 것들은 모두 첨가하여 수록한 것으로 조선 법의학의 우뚝 선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정조 때에는 더 한층 발전하여 이를 알기 쉽게 한글로 번역하여 《증수무원록언해(增修無寃錄諺解)》가 출간되었으니 그 보급됨이 더욱 넓어졌던 것이다.

실로 쉽고도 합리적이며 실용성이 뛰어난 조선의 과학적 면모와 더불어, 온 백성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심혈을 기울인 이러한 법의학서가 있었다는 것은, 오늘날 법조문이 고등지식을 가지고도 해석하기 어려운 우리의 실정에 비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의 입장에서 보기에 다소 조악할지 모르나, 당시에 동원된 여러 수사기법들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전히 그 과학성은 인정받을 만하다. 이것은 곧 민초를 어루만지는 힘이 비단 정치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원통함을 없게 하려는 조선의학의 바탕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생각을 모아야 할 것이다. <값 9천원>

김홍균
서울 광진구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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