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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목마을에 해뜨고 해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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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목마을에 해뜨고 해질 무렵
장준섭
충남도의회 의원
억겁(億劫)을 두고 왜목마을에도 해가 뜨고 졌다. 사계절 따라 조금씩 자리가 바뀌는 듯 하나 노적봉 세 봉우리 중 만조가 되면 물에 잠길 듯 키가 작은 가운데 봉우리를 붙잡고 어김없이 떠서 저녁나절에는 충남의 최북단에 위치한 대난지도 서북단 황해 수평선으로 진다.
해돋이는 동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이곳 당진사람들은 눈여겨보지도 않았는데 팔도자연풍광에서 진경을 찾아보려고 애써오신 경향신문 매거진X 팀장 김석종님과 한겨레신문 최성민 부장님, 그리고 충청남도 관광과 신화용 사무관의 끈질긴 노력으로 서해에서도 장엄한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왜목마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왜목마을은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에 구석진 작은 해변마을이다. 동으로는 아산만을 끼고 멀리 수평선을 따라 맑은 날이면 평택지방 경기땅이 지척으로 보이고 서북으로는 황해인데 몇해전에 서쪽으로는 짤라 방조제를 쌓아서 지금은 거대한 대호평야가 멀리 서산땅까지 곡창지평이 가물가물하다.
옛날 황해 파도가 동서북으로 높을 때는 왜목마을 산허리는 잘릴 듯 가늘어 마치 물위에 징검다리를 놓는 것 같아 지명을 교로라 불러왔다.
왜목마을에 태공장이라는 조그만 여관이 있는데 뜰아래로 짙푸른 서해 바닷물이 굼실굼실 가득하고 오솔길 하나가 구불구불 파도따라 해변으로 가다가 잠깐 사이 산등성이로 숨어드는데 바로 이 길을 따라 동녘으로 서면 장엄한 왜목마을 해돋이를 보게 된다.
지척에 장고항이라는 건넛마을이 있고 그 어귀에 노적봉이라는 산자형 바위 셋이 수평선 끝자락을 막아섰는데 뜨는 해는 바위들을 감아 싸고 진홍빛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어디든 해돋을 때에는 서기가 어리는 것이지만 왜목의 해돋는 순간은 하늘과 수평선과 대안의 구릉들이 어우러진 지형 때문인지 서운이 가득하여 누구나 신비경에 놀라 옷깃을 여미게 된다. 두 아름 진홍빛 돋는 해가 노적봉으로 살짝 올라서는 순간에는 보는 이들이 환호성을 멈추고 숨을 죽인다. 바닷가는 잠시 태고연한 적막에 싸이고 바람도 조용해진다. 모두가 무아의 경지에 몰입한 것이다.
신께서 연출하신 지상 최대의 비경 앞에서 모두 세진을 떠나는 것이다. 이곳은 산등성이를 해질무렵에 오르면 수평선으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는 것이 또한 유명하다. 아침해를 보고 해변에서 쉬었다가 저녁노을과 함께 수평선으로 지는 해를 배웅하는 멋 때문에 풍광의 오묘함을 아는 사람들이 줄서 찾는 곳이 되었다. 해지는 모습은 왜목마을 산등성이 어디서든 가능하지만 당진화력이 세워놓은 석문각 서편 기둥에 기대서는 것이 제일 좋은 위치일 듯 싶다.
석문각 바로 밑으로 서해의 짙푸른 물결이 잔잔히 흐로고 4~5월에는 수평선으로 해가 기울 때쯤 남보석을 자르르 깔아놓은 듯 고운 물결 위에다 낙조를 뿌리는데 삽시간에 섬섬사이 바다는 금빛, 은빛 물결로 가득히 찬다. 이때쯤 작은 섬들은 진록색 너울을 펴 능선미를 한껏 노출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으려는 태고의 수줍음으로 지는 해를 배웅하는데 지는 해도 섬들을 어느 하나 밟지 않으려는 내심으로 섬들 사이에 비좁게 뚫어놓은 수평선을 찾아 어김없이 진다.
진홍빛 태양이 수평에 닿을 듯 닿을 듯 아쉬워 멈칫하는 순간은 천하제일의 극치를 보게 되는데 그때 지는 해도 잠시 작열을 멈추고 그 모습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청초한 여인네 같은 섬들의 배웅에 아쉬움을 보이려는 듯 한마디 밀어를 남기고 싶은 듯 머뭇머뭇 하지만 수평선으로 모습을 감춘다.
그러나 아직 바다에는 잔조가 가득하고 하늘에는 노을이 가득하다. 이 또한 신께서 연출하시는 웅장한 미술인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장관이요, 신비의 극치이다. 석문각 멀리에 어둠이 내리 깔리고 잔조와 노을을 모두 지웠는데도 사람들은 석고처럼 굳은 듯 떠날 줄을 모른다.
서해 고속도로가 뚫리는 2001년 그때쯤은 왜목마을은 서울에서 한시간 남짓하고 당진사람들은 오시는 이가 편안하도록 왜목마을 5만평에다 쉼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하룻밤 묵으실 요량으로 왜목을 찾으면 해뜨고 지는 진경에 무아의 경지를 맛보면서 조용한 서해 바닷가에서 심신의 안식을 찾으실 진객이 되실 것이다.
왜목마을에 해뜨고 해질 무렵 그것을 표현해 보려고 여러날 끙끙댔지만 그 진경을 그리는 데는 문턱에도 못간 듯 싶다. 둔재를 몇번이고 자탄해 보면서 누구라도 이 신비는 그려내지 못할 것이라는 자위와 함께 그러기 때문에 대표적 개념이라는 게 없다고 핑계대면서 필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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