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微騰)이 켜진 밤은 외롭다 가로누운 풀밭들이 아수라장 되어 빈 하우스 안에서 구호의 깃발을 머리에 이고 관문 앞 달려와 엔진을 끈다 어깨띠가 타도록 구호의 눈을 붉히면 때로는 연대가 나와 방패연을 날리고 때로는 중대가 나와 가오리연 날리고 키 큰 장정은 귀에 보청기를 끼고 천지신명께 귀를 기울인다 봄이 온다는 대답도 아니고 뜨거운 여름이 온다는 대답도 아니다 이대론 물러설 수 없다는 명동 사거리의 투언 난들 어쩌란 말이요 답답하군요 논둑에 난 잡풀 때문에 건드리지 못하고 홀로 울어야 하는 새내기 시인들 농가 부채탕감을 주장하는 시야가 높다 재벌사와 계열사가 문 닫으므로 낙향하는 젊은 초상들 내 몸 속 뜨겁게 흐르는 물 한 주머니씩 생명수 되라 골고루 나누어 주며 미등 하나 켜주고 싶은 하루 우리 아버지도 애초엔 한 많은 농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