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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뒷번호 배정은 무의식적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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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간현덕
대전여성민우회 간사

충남 태안에 있는 한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번호배정을 하면서 남자가 앞 번호를 차지하게 하고 그 뒤로 여자들의 번호를 매기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요지의 전화였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우선 대전과 충남지역 초·중·고등학교 중 남녀합반제를 실시하고 있는 30개 학교를 무작위로 골라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에서 남학생에게는 앞 번호를, 여학생에게는 뒷 번호를 배정하고 있었다. 각 학교 관계자들은 그 이유를 학사행정상의 편의와 관례라고 설명했다. 초·중·고등학교의 경우 성비에 따라 통계치를 내야하는 상황이 많아 불가피하게 남녀를 나눠 번호를 배정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학교의 관계자는 “솔직히 녀남 보다는 남녀가 자연스러운 나라에 살고 있지 않느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선 교사의 얘기는 달랐다. 모 학교의 한 교사는 “요즘은 학교전체가 전산화 돼 있어 굳이 남녀를 구분하여 번호를 배정하지 않아도 성비에 따른 통계를 내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역설했다. 이 교사는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언제든 번호배정 문제의 시정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초등학교 시기 즈음을 정신사회학자들은 학령기(7~11세)로 구분 짓는다. 이 시기는 어린이의 관심이 가정으로부터 학교나 친구에게로 옮아가고 성 역할도 뚜렷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열등감을 얻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아이들에게 언제나 여자는 남자의 뒤에 설 수밖에 없음을 가르치며, 여학생들에게는 출발선상에서부터 선택사항 없이 좌절과 패배를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20일, 여성부는 한 여중생이 자신의 학교의 사례를 들어 이같은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 다분히 성차별적이라며 해당 학교에 시정권고를 내리고 교육부에 개선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같은 여성부의 입장이 실효성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일선교육청에서는 ‘만약 교육부에서 개선을 요구해 와도 새학기가 되어서나 진행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또한 각 학교장의 재량이므로 선택적으로 응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 번호 배정에서 남자가 먼저이고 여자가 나중이 되는 것이 행정상의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허나 이러한 관례 하나 하나가 우리 사회의 남녀차별을 일으키는 사회 문화적·의식적 단초가 됨은 분명하다. 이러한 단초들이 모여 미래의 남녀불평등을 만들어 낸다. 미래의 한국사회를 어떤 한 성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무의식적 관례일지언정 일소해내는 굳은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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