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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01.09.17 00:00
  • 호수 387

[학교탐방]숲속 작은학교에 가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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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시회해요”

작은학교 큰 꿈 - 당산초등학교 방과후 미술교실

송산면 당산리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 고즈넉이 자리한 당산초등학교(교장 백세웅). 다른 학교 같으면 수업을 끝낸 개구장이들로 오후 한낮의 운동장이 시끌벅적할 만도 한데 웬일인지 주인 잃은 신발짝마냥 허전하기만 하다.
‘이런,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나’ 약속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버린 것을 깨닫고는 가슴 졸이며 학교 건물로 들어서니 1층 한 쪽에 자리한 급식실에서 재잘대는 아이들 소리가 새어나온다.
“찰흙 더 빌려줘. 나중에 내 것 쓰면 되잖아.” “만지지 마. 꽃게 망가져. 선생님...”
홍현경(여·30세) 교사를 앞세워 들어선 급식실 안에는 스물 댓명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무엇을 하는지 북새통이다. 여느 아이들 같으면 학원을 갔거나 아니면 마을 어귀에서 뜀박질하며 놀 시각, 당산초등학교 아이들은 학교 급식실에 모여 찰흙빚기에 한창이다.
“작은 학교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고안해낸 것이 바로 방과후 미술교실입니다. 당진 시내와 10여분 거리에 있으면서도 오지마을로 불리는 이곳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방과후 수업이지만 1ː1 개인교습과 다름없습니다.”
5학급에 전교생이라야 45명이 전부인 작은 학교 당산초. 김명숙(여·40세) 교무부장의 말대로 방과후 미술교실은 산속 깊숙이 자리한 당산·오도·송석·금암리 아이들에게 표현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학부모들에게는 사교육비 부담을 들어주는, 작은 학교만의 장점이자 자랑이다.
방과후 미술교실은 저학년, 고학년 구분없이 모두 한 장소에서 이뤄진다. 당산초등학교를 찾은 날에도 찰흙 빚기를 하는 저학년들과 상록문화제 미술대회를 앞두고 판화, 회화 등을 실습하는 고학년들이 급식실에 모여 함께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도시아이들 부럽지 않아요. 우리가 그들보다 자유로워요(유소희·여·6학년).”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래도 미술교실은 좋아해요. 집에 가면 바로 숙제해야 하잖아요. 집에 가는 것보다는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그림 그리는 게 훨씬 재미있어요.(김은지·여·5학년).”
“예쁜 색으로 색칠할 수 있어 물감이 좋아요. 친구들이 잘 그렸다고 말해주면 더 많이 그리고 싶어져요(정다영·여·1학년).”
학년도 다르고 그에 따른 학습수준도 다른 아이들. 장소가 여의치 않아 비좁은 급식실에서 미술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서로 조금은 삐걱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아이들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커가고 있었다.
“열가지를 일러주면 열가지 모두 잘 따라하는 아이들입니다. 스펀지 같다고나 할까요. 그만큼 순수하고 맑다는 뜻입니다. 짜증내고 불평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 그려내는 그림들은 하나같이 아이들 마음을 닮아 투명합니다.”
이곳 아이들의 꾸밈없고 솔직한 그림에 매료됐다는 미술교사 홍현경씨는 이들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올 가을 읍내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도자기 실습때 아이들과 함께 만든 도예작품들과 그간 차곡차곡 쌓여간 회화 작품들을 바깥 세상에 내놓고 한껏 자랑할 셈이다.
무르익는 가을의 한 가운데 어쩌면 읍내 아담한 전시장에서 이곳 아이들의 순수와 마주칠 수도 있겠다. 그날 전시장 하얀 벽면에는 그림속 사람들 얼굴을 자신의 기분에 맞춰 그린다는 다영(여·1학년)이 작품도 예쁜 액자에 끼워져 걸려 있겠고, 꾸미기를 잘하는 민영이(여·4학년)의 색종이 작품, 손재주가 있어 찰흙으로 웬만한 것들은 만들 줄 안다는 아름(6학년)이의 조소작품,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전통문양을 닮은 독특한 그림을 그린다는 민진(여·2학년)이의 작품도 볼 수 있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던 당산초등학교에서의 한때. 이제는 일어서야겠다 싶어 자리를 툭툭 털려니.
“언니 아니잖아요... 뭘. 아줌마 같은데요.”
신문사에서 온 ‘언니’가 예쁜 사진을 찍어줄 거라는 홍현경 교사의 말에 미옥(여, 5학년)이가 던진 말이다. 평소 같으면 부아가 치밀어 오를 일인데 왜일까. 밉지가 않다. 꾸며낸 정답을 말할 줄 모르는 아이들. 이쁘기만 하다.

※ 당산초 2001년 미술대회 입상성적
-제23회 군학생실기대회: 6학년 유소희 은상, 2학년 주은총 동상,
강혜리 외 3명 장려상
-제1회 환경 그림 그리기 대회: 1학년 정다영 최우수상,
3학년 손단비 장려상
-자연사랑 포스터 그리기 대회: 3학년 유병길 입선
-제12회 초등학교 미술실기대회: 5학년 김옥규, 4학년 이민영, 1학년 정다영 은상. 2학년 주은총 외 3명 동상, 6학년 김아름 외 3명 장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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