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부터 30년 동안 송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사진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내가 학생일 때 사진과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가족과 제자들 사진까지 다양했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그 시절의 재밌었던 혹은 감동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첫 번째 사진은 1968년 중학교 1학년 시절 친구들과 서울 흑석동 국립묘지에서 찍었다. 배경으로 찍힌 탱크가 6.25전쟁 때 북한에서 몰고 내려온 탱크다. 그 당시엔 놀 데가 없어서 집 근처 국립묘지에 가서 놀고 그랬다. 당시엔 모두 저렇게 생긴 가방
농협에 입사한 것이 1975년이니 36년 전의 일이다. 농협 근무 전에는 잠깐 교직생활에도 몸담았다. 농협 입사 후 고대농협과 석문농협 등을 거치다 지난 2007년 석문농협 전무를 끝으로 32년간의 농협 생활을 마무리하고 조합원 신분으로 돌아갔다. 이후 지난 2009년 10월20일 석문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30여 년간 젊음을 바쳤던 농협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합원과 직원들을 위해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첫 번째 사진은 농협에 재직하기 전 교사 생활 때 찍은 사진이다. 1970년대 초반 고대
당진에 와서 당진사람이 된 지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1978년에 결혼해 1981년에 당진으로 이사를 왔다. 당진에 와서 오토바이 부품 대리점을 했는데 기독교인이었던 아내를 따라 처음 당진교회에 가게 됐다. 처음에는 아내의 권유도 있었고 지역 사람들도 사귈 겸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교회를 다니면서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고 조금씩 신앙심이 생겨나 이제는 장로까지 되었다. 첫 번째 사진은 나의 결혼식날 사진이다. 요즘에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전통혼례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진은 전통혼례의식 중 하나인 초례를 하
오랜만에 옛 사진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해보게 됐다. 사진들의 대부분이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한 것이었다. 마을잔치부터 면천면 크고 작은 행사까지. 태어나서부터 이날까지 면천 삼웅2리에서 살고 있다. 우리 마을은 공기 좋고 인심 좋은 마을이다. 130여 명이 모여 사는 마을에 절반이 노인회원으로 점점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 마을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을 참 잘 모신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놀러를 가도 항상 어른들을 먼저 챙기는 젊은이들이 고맙고 대견하다. 젊은 시절부터 고향을 지키며 면천농협 이사
옛날 사진을 들춰보니 지나간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사진 속 모습들이 새롭다. 젊은 시절에는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큰 쌀장사를 했다. 옛날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완행열차에 쌀 1천가마를 실어 서울로 팔러 다녔던 생각이 난다. 이후 고향에서 조합장으로 일하면서 그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조합장도 CEO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첫 번째 사진은 40여 년 전 약혼사진이다. 면천 송학리가 고향이었던 나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중 부모님 소개로 면천 자개리에 사는 아내를 만났다. 아들만 셋을 낳아 키우
옛날에 찍었던 흑백사진이 참 많았는데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군대를 마치고 우연히 아내를 만나 결혼한 뒤로 농산물유통업을 하다가 지금까지 농사꾼으로 살았다. 1남1녀를 낳아 풍족하진 않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려 이날까지 고향에서 살고 있다. 해외에서 찍은 사진 등 최근 사진은 많지만 가족들 사진 위주로 골라봤다. 첫 번째 사진은 중학교 졸업사진이다. 나는 합덕중학교 19회 졸업생이다. 학창시절에는 활발하고 꽤 모범적인 학생이었던 것 같다(웃음). 헌데 지각은 밥 먹듯 했다. 학교와 집이 1분 거리라서 매번 학교 종소리를 듣고 등교를
1983년도부터 10년간 합덕 솔뫼성지 관리일을 하다가 정년퇴직하고 대건노인대학을 설립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합덕에 노인이 많은데 여생을 의미 있게 보낼 곳이 마땅치 않더라. 마침 당시 신합덕성당 정문 앞 대건신협 2층에 자리가 나서 대건노인대학을 설립하고 벌써 30년이 흘렀다. 첫 번째 사진은 91년도 합덕대건노인대학 제1회 수료기념 사진이다. 노인대학은 4년제인데 매년 수료식을 가졌다. 대건노인대학 1기에는 당시 합덕에서 내로라하는 노인네들은 다 모였었다. 시장에서 큰 장사를 하는 사람, 돈을 좀 모은 사람, 젊은 시절 지역에
기자의 연락을 받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아내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7자매의 첫째인 아내와 집안 막내인 내가 결혼했을 때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두렵기도 했지만 아내의 따뜻한 내조와 묵묵히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모습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아내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당신은 최고의 여성이며 부족한 나와 결혼해줘서 고맙다.첫
4-H 활동을 오랫동안 했었다. 스물 여덟에 한국농어촌공사 당진지사에 보조원으로 입사해 마흔에 일반직 전환 시험을 통과했다. 마흔 다섯에 4급을 달았고 지금은 농어촌공사 석문호관리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바쁘게 살아서인지 내 옛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 찾기가 어려웠다. 첫 번째 사진이 당진 4-H 활동을 할 때 찍은 사진이다. 뒷줄에서 왼쪽 첫 번째
삼남매를 두었다. 큰 아들은 결혼해 듬직한 손자까지 안겨주었다. 아들 외에도 두 딸(영주, 유리)을 자랑은 하고 싶어도 함께 찍은 사진이 거의 없어 안타깝다. 우강면 공포리장을 10년간 맡아오다 올해 그 자리를 내놓았다. 첫 번째 사진은 1997년 우강농협에서 주관해 선진농법을 배우러 일본 연수를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안경을 써도 잘 보이지 않으니 큰
여고시절, 나는 대단히 말괄량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로온 선생님에게 장난을 치는 등.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장난이 애교 수준이었던 것 같다. 나를 미워하거나 크게 혼낸 선생님이 없었던 것을 보면.(웃음)첫 번째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1973년 죽동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의 사진이다. 면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죽동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사진을 고르다 보니 재밌는 옛 사진이 많아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씨름선수 생활을 했고 레슬링, 유도 등 다른 종목에서 활동도 했었는데 그래도 씨름이 가장 재밌는 운동이 아니었나 싶다.첫 번째 사진은 내 군생활 모습이다.(맨 왼쪽이 나) 남들과 좀 다른 군생활을 했던 나는 헌병대에서 사복근무조였다. 헌병대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43년, 그리운 얼굴 하나하나가 모두 새롭다. 강냉이 죽에 강냉이 빵의 아련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성당초등학교에서 4학년 2학기에 면천초등학교로 전학해 2년 반의 추억이련만 눈감으면 떠오르는 아련한 기억은 늘 가슴을 찡하게 한다. 속상한 일에도 웃어 주던 친구, 엄청난 갈등에도 인생이 별거냐며 너스레를 떨어 주는 친구, 아픔을
골프 공부를 시작한 지 10여 년만에 프로골퍼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것이 지난달이었다. 어려서부터 체육을 좋아했던 나였다.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지도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첫 번째 사진이 당진초등학교 5학년 때 당진초 야구부원들과 찍은 사진이다. 지금이야 야구 선수가 유망한 직업이 되었지만 저 때는 야구선수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었다. 뒤에서 두 번
지난 2007년 남편(정태선)의 회갑연 사진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7남매를 낳고 키우며 고생을 많이 했다. 자녀들도 이제 7남매 중 아래 세 자매만 두고 모두 출가해 손주들이 잔뜩이다. 바쁜 아들 내외를 대신해 손녀(앞줄 오른쪽 두번째)를 거의 내가 키우다시피 했었는데 사진을 보니 무척 보고 싶어졌다.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자녀들 모두 당진
예순 넷이 된 지금 과거를 돌이켜보면 역시 사진밖에 남는 게 없다. 1979년 반촌1리 새마을지도자를 시작으로 마을 일을 챙기기 시작한 지 어느새 32년이 되었다. 첫 번째 사진은 송악읍 가교리 구자일 씨와 찍은 사진이다. 구자일 씨는 농촌지도자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82년이니 내가 새마을지도자를 마지막으로 한 해이다. 이듬해부터 반촌1리 이장을 맡아
지금도 가끔 하키선수 시절을 생각해요. 고등학교 때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선수였는데...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미련없이 선수를 했겠지요.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알게 됐으니 후회하지는 않아요. 남편과 두 아이들이 옆에 있으니까요. 첫 번째 사진은 제가 고등학교 때 필드하키 선수로 뛸 때 찍었던 사진이에요. 온양여상에 다녔는데
고대면 항곡리 출신인 내가 당진읍 중앙리에 자리잡은 지 4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29살에 결혼하고 아내(최철희, 62)와 3남매를 두었다. 이젠 옛사진을 봐도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생각은 든다. 첫 번째 사진은 제26회 당진군민체육대회에서 당진읍이 우승을 할 때 찍은 사진. 왼쪽에서 북을 들고 있는 사람이 나다. 내
집안 곳곳에 있는 상패와 표창패를 보면 옛 생각이 난다. 내도리라 불렸던 고대1리에서는 예부터 ‘안섬풍어당굿’ 행사가 열렸었는데 나이가 드니 옛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진을 봐야 기억을 더듬는 정도다. 첫 번째 사진은 아내(윤란식, 61)와 23살 때 만나 찍은 사진이다. 벌써 40여년이 흘렀다. 아내와 이 사진을 찍고 얼마 후
당진군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장을 맡은 후 여유를 찾을 수 없는 나날을 보낸 것 같다. 각종 연수와 회의, 내 본업이 뒤로 밀리는 건 아닌지... 옛 사진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첫 번째 사진은 1982년 제1공수여단 근무하던 시절 찍은 사진이다. 오대산으로 유격훈련을 가서 찍은 사진으로 기억한다. 같은 내무반의 동료들인데 저 당시 내무반에서 잤던 동료들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