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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생각하며]나이 들어 살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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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숙
본지 편집위원

2002년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않은 어느 날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든 착잡한 기분에 젖어있는데 라디오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흘러나왔다.
별 생각없이 텔레비전을 보는데 막 지나간 광고가 도대체 뭘 사라는 것이었는지 몰라 잠시 멍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또는 노래방에 갔는데 젊은이들이 부르는 노래들이 전부 생소한 것들 뿐이어서 당혹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혹은 가지고 있는 휴대폰의 다양한 기능을 사용할 줄 몰라 전화하고 전화받는 것 외에는 거의 쓰지않습니까? 라는 질문이었다.
위 세 경우 모두 포함된 사람은 물론이고 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사람도 이미 자신이 나이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세 경우다 포함된 자신을 떠올리고는 당혹감에 씁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대중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져있는 자신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적 방식에 익숙해 디지털적인 사고에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대중적 흐름에서 비껴서있는 경우와는 다르다.
후자가 의지적으로 대중적 흐름을 거부한다면 전자는 어쩌다 가다보니 그 속도를 잡지 못하고 자꾸만 뒤쳐지는 경우다.
마치 마라톤을 달릴 때 많은 마라토너들이 뭉쳐 달리는 그룹에서 뒤쳐져 뛰는 그런 기분과 같을 것이다. 그 절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삼 인터넷 여기저기를 몇시간이고 서핑하며 나도 좀 끼어달라고 몸부림도 쳐봤지만 나이 들고 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젊은 세대의 감각을 따라잡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짓고 나홀로 개성있게(?) 살아가기에도 세상이 너무나 유혹적이다.
어느 날, 자식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개그를 보며 모두들 깔깔 웃는데 나 혼자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벙벙하게 있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하기 조차 끔찍한 일이지만 평생을 부지런히 배우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생소했던 ‘평생교육’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것이 되었고 필요한 것이 되었다.
노인대학, 주부대학, 대학교 산하의 사회교육원, 평생교육원, 문화센타, 복지회관 등 다양한 곳에서 사회인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평생 배워야 한다는 의식과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앞으로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인생을 살아온 지혜와 경험만으로 버티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으로든 세상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이 든 사람들의 몸부림을 그려본다. 그리고 그속의 나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 모습이 처량하기보다는 아름답고 위대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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