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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만(81) 신평면 초대리] 환갑잔치에 얽힌 ‘혼자만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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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인회 당진군지회 신평면분회장

 앨범을 펼치고 반가운 사진들을 접할 때면 문득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사진 속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머릿속으로 했던 생각들이 바로 그것이다.

 머릿속에 떠올렸던 많은 생각과 세상에 대한 꿈들 중엔 사랑하는 아내(장은섭, 74)에게도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미처 말하지 못한 내용도 있다.

 지금은 대부분 간소하게 지나가는 환갑 잔치! 첫 번째 사진은 바로 그 때의 모습이다. 여든 하나의 나이가 돼버린 나와 같은 세대들에겐 매우 익숙한 장면이지만 젊은 사람들에겐 다소 낯설지 않을지... 사진 속 보이는 것처럼 동네(초대리) 친구들과 아내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세 아들(병임·병화·병태)도 나의 환갑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내에게 조차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행여 아내는 알지 않았을까!

 주위 어른들이 61세가 됐을 때 했던 환갑 잔치를 하자니 ‘여생이 얼마나 남았나!’ 걱정도 되고, ‘이제는 고비구나!’라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표현 못할 외로움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커다란 병 없이 비교적 건강한 삶을 살았고 벌써 20년이나 지나버린 일이 됐으니 새삼 놀랍기만 하다. 

 두 번째 사진은 부산에서 육군 하사관으로 근무했을 당시 아내와 세 아들과 함께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큰아들 병임이는 함께 살며 한보에 다니고 병태는 대전에서 상업을 한다. 그리고 막내 병화는 전북 익산에서 회사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모두 남부끄럽지 않게 잘 자라줘서 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리고 나와 함께 배 위에 나란히 앉은 아내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담아왔다. 그런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도 기회를 빌어 해본다.  

 세 번째 사진은 초대리에 사는 친구 곽영화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상여를 진 모습이다. 나는 상여를 지켜보느라 뒤돌아 서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 당시 마을주민들의 협동정신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사진인데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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