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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5.08.22 00:00
  • 호수 576

[농림부장관 표창 받은 강병년씨]“남 앞에 당당히 서기 쉽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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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초순 열린 도 농업경영인 대회에서 농림부장관 표창을 수상한 강병년(54)씨는 농업경영인 당진군연합회장과 정미면 신시리 마을 이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부인 정필선(54)씨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현재는 대외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누구보다 자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지나온 여정에는 숨어있는 사연들이 있었다. 쉽게 들춰낼 수 없는 그만의 사연을 들어 보았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강씨의 불행
 강 회장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 것은 그의 나이 18세 때였다. 인천으로 상경한 강씨는 한 공장에 취직하게 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소중한 오른손을 잃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미성년자 신분으로 취직한 터여서 마땅한 보상도 받지 못해 그의 미래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한 순간에 장애인이 된 강씨가 느꼈을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아픔은 미루어 짐작하기조차 힘든 것이었다.
 장애로 인한 아픔으로 방황하던 강씨는 호롱불을 처마에 내건 채 기다림으로 밤을 지새우는 어머니(고 심금례씨)를 위해 한 가지 원칙을 세우게 된다. 바로 ‘무슨 일을 하던지 잠만큼은 꼭 집에서 잔다’는 원칙이었다. 그 뒤 강씨는 어머니가 밤새 기다리지 않도록 어떤 일이 있어도 잠만큼은 집에 들어가서 자곤 했다고... 이렇듯 강씨를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는 20여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술은 즐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마음을 더 아프게도 하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강씨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자 주위에서는 “저 사람은 다 버렸어”라고 체념할 만큼 걱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서른여덟에 부인 정씨와 결혼하기 전까지 남은 한 손으로 손수 밥을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주위에서는 다를 걱정을 했지만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에 그 때부터 술 한 잔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술이라는 것이 생활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더 아프게도 하니까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생활 그리고 오기
 결혼 이후에도 강씨에게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찾아왔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농업경영인이 된다는 것도 쉽지 않았고 마을이장을 한다는 것도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럴때 일수록 편견에 도전하고 잘해내고 싶다는 오기가 강씨의 마음을 싹틔웠다. 사회활동이 많아져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강씨. “주위의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며 주변에게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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