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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2007.11.05 00:00
  • 호수 685

[지역명물소개 ⑦ - 대호지만 '충장사'] 명장 남이흥의 사당과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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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이흥 장군의 묘

조선 시대 명장 남이흥 장군의 사당
 대호지면 도이리에는 조선시대 공신인 충장공 남이흥(1576∼1627)장군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사당 충장사가 있다. 이 사당에는 남이흥 장군과 그의 부친 의천군 남유의 신위가 함께 모셔져 있다.
 의천군 남유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경상도 남해 노량 앞바다에서 전사했으며 아들인 충장공 남이흥은 조선 인조 때 일어난 이괄의 난 평정에 크게 기여하고 정묘호란 때는 평안도 안주에서 청나라와 맞서 싸우다가 성안으로 많은 적을 유인한 후 화약고에 점화해 자폭, 순국한 장군이다.
 조정에서는 그의 충절을 기려 좌의정에 추증하고 의춘 부원군으로 봉함과 동시에 '남씨양세충신정려'를 내려 그 공을 기렸다.
 남이흥 장군의 묘는 원래 경기도 성남에 있었다. 1971년 7월 그 자리에 성남시청이 신축되면서 후손들과 함께 사당이 내려와 있는 대호지면 도이리로 이장됐다. 이때 부친 의천군 남유장군의 묘도 이장됐다. 이장 때 마침 남이흥장군의 영정과 교지, 관복, 곤룡표, 구의 관곽등이 출토되었는데 9점에 이르는 출토품은 1970년 12월 31일 ‘중요민속자료 제21호’로 지정되어 충장사 모충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남이흥 장군 묘역은 도지정 문화재
 복식과 호패 등 30점이 지난 2004년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로 추가지정되기도 했다. 남이흥 장군 유품 중 기존의 문화재 외에 고문서와 영정, 복식, 생활자료 등 30점은 문화재청으로부터 중요민속자료 제21호인 ‘남이흥 장군 유품’에 대해 문화재로 추가 지정하는 한편 지정명칭을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으로 변경했다. ‘남이흥 장군 유품’ 중 복식 및 호패 8점은 지난 1970년 문화재로 지정됐으나 최근 문화재청의 현지조사 결과 고문서와 영정, 복식, 생활자료 등 총 30점이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중 교지 및 교서 7건은 남이흥과 직접 관련되는 자료들로서 모두 공신과 순절인에 대한 왕의 특별한 배려를 느낄 수 있으며 남이흥 가문의 재산관련 문서인 별급문서와 분재기 등 6건은 당시 남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비중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충남도는 남이흥 장군의 신위가 모셔진 사당인 모충관과 남이흥 장군의 묘역을 도지정 문화재 52호로 지정해 놓고 있다.

매년 열리는 남이흥 장군 문화제
 이곳에서는 남이흥 장군의 탄신일인 매년 10월 9일 이튿날인 10일까지 남이흥장군 문화제 집행위원회(위원장 김홍장)의 주관으로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이 문화제는 어느새 19회를 지내고 내년에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지는 20주년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이 행사에서는 남이흥 장군을 소재로 학생들의 글짓기 대회와 전국 궁도대회, 군내 초중고 학교 대항 씨름 대회가 열린다. 이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문화제에 참가한다.
 그러나 그동안 남이흥 장군 문화제는 ‘문화제’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지 못하고 일부에서는 ‘숭모제’라고 지칭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제19회 행사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집행위원을 맡아 성대히 행사를 치른 김홍장(충남도의원) 위원장은 “이번 행사는 성공적이었지만 앞으로 남이흥장군 문화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문화행사와 남이흥 장군 추모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충장사를 끝으로 지역명물소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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