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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1999.06.28 00:00
  • 호수 280

행정의 사각지대 기지시 가스관 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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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행정의 사각지대 기지시 가스관 민원



만신창이 된 마을공동체 누가 치유하나



<송악> 한국가스공사가 서해권의 각종 공단과 집단주거지에 LNG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시행중인 가스관로 매설공사가 송악면 기지시리 시가지 한복판을 지나게 됐다.

이곳은 한보·동부 등을 드나드는 대형차량이 꼬리를 물고, 삽교천·당진쪽을 오고 가는 시외버스가 몇분 간격으로 지난다. 당진의 교통혼잡지역을 꼽으라면 아마도 당진터미널 주변 다음으로 꼽힐만한 곳이다.

이런 도로에 직경 750㎖짜리 대형 가스관이 묻히게 됐다. 그렇잖아도 비좁은 도로의 한쪽을 파내 관을 묻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겪게 될 불편이 어느 정도일지는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놓고 지금 송악면 기지시리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마을 젊은이들은 가스관이 위험물이라며‘결사반대’를 외치며 한밤 중에 진행되는 공사를 막으려 연일 거리로 몰려 나오고 있고, 가스공사쪽에서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시행되는 공사이므로 반대하더라도 강행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주민들의 실력행사로까지 치달은 기지시 가스관 문제의 원인은 오래전부터 외곽으로 노선을 우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던 가스공사쪽이 공기가 임박한 무렵에 와서야 우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계획대로 국도를 따라 가스관을 묻겠다고 통보해옴에 따라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스공사쪽이 우회하기로 검토한 곳은 바로 당진군이 도시계획도로를 내기로 되어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현재 계획만 세워져 있을 뿐 용지보상 등은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 공사비도 줄이고 주민피해도 최소화 할 수 있었던 우회안은 결국 가스공사쪽과 당진군의 줄다리기 끝에 ‘없었던 일’로 되어버린 것이다.

우회안이 관철되지 않은 이후의 대책은 고스란히 주민대표들의 몫으로 떨어졌고 가스관 문제는 엉뚱하게 주민간의 갈등으로 비화됐다. 우회안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뒤늦게 들어야 했던 마을대표들은 시가지를 통과함으로써 입게 되는 주민불편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물사정이 나쁜 기지시에 간이상수도를 설치하는 것으로 시공업자쪽과 협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해들은 마을 청년회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밀실협상’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몇몇이 뇌물을 받고 노선을 옮겼다’는 등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결국 마을이장, 개발위원 등 집행부 전원이 사표를 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사례는 비단 이 마을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역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국책사업이 진행될 때 항상 앞에 나서서 ‘티격태격’해야 했던 당사자는 주민과 당장 공사를 해야 하는 시공업자였다.

소모적인 민원이 발생되지 않도록 먼저 나서야 하는 지역의 지도층, 행정기관은 항상 일이 터진 뒤에야 허겁지겁 수습에 나서는 형국이 지방자치가 실시된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걸음마 조차도 떼지 못한 당진군 지방자치의 자화상이다.

기지시 가스관 민원에서는 주민들의 자치의식 부족문제도 심각하게 드러났다.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마을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대책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기 보다 십수년간 마을일에 봉사해온 사람들을 몰아부치는 데에 목소리를 더 높였다. 남은 것은 만신창이가 된 마을공동체였다.

가스관 보다 더 무서운 이 상처를 치유해야 할 부담도 결국 주민들 몫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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