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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 입력 1998.05.11 00:00
  • 호수 223

심훈문학상 당선작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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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분교를 빠져나와 해수욕장 쪽으로 넘어가는데 301호에 묵고 있는 반백의 남자와 앳되어 보이는 여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돈 좀 있어 보이고 뱃살이 오른 그 반백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묵묵한 표정이었고 앳되어 보이는 여자는 한 두 걸음 뒤쳐져서 고개를 약간 떨구는 듯한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해풍장에 묵고 있는 사람들 중 아직 한번도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반백과 앳되어 보이는 여자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처남이 반백에게 말을 걸었다.
“넘어갔다 오시는 모양이군요. 그런데 저 시커먼 배들이 무슨 배랍디까?”
“모르겠습니다.”
그것 뿐이었다. 반백은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은 채 그대로 걸음을 옮겼고, 앳되어 보이는 여자는 다소 고개를 더 떨구는 듯한 모습으로 뒤따랐다.
도리어 무안해진 우리는 더이상 말을 걸지 못하고 잠시 그들의 뒷모습을 훑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 반백과 앳되어 보이는 여자는 거의 방에서만 지냈다가 열려 있을 때 보면 팔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티브이를 보는 반백의 모습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 앳되어 보이는 여자는 이따금씩 열려지는 방문으로부터도 자신을 감추고 있었던 것일 터인데, 반백 보다도 더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몇날 며칠을 방안에 갇혀서만 지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하루에 한 두번씩은 바람을 쐬러 나가곤 했다.
이따금씩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 보면 선착장 쪽의 바닷가로 천천히 나가거나 돌아오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럴 때도 그들은 거의 말이 없었고 항상 한 두 걸음씩 떨어져서 걷곤했다.
한번은 내가 창 밖으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부녀지간인 모양이라고 했더니 내 여자는 정색을 하였다.
“저게 어째서 부녀간의 모습이야. 그렇게도 사람 볼 줄을 몰라? 저들이 부녀간이라며 다른 가족들도 있을 텐데 달랑 둘이서만 오겠어? 그리고 반백이 말이 없다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저렇게 한 두 걸음씩 떨어져서 걷는 것은 무엇이며 뭔가 자꾸만 다른 사람들을 피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어. 저들이 부녀간이라면 아무리 다 성장한 딸이라 하더라도 아빠의 팔짱을 끼고 뭔가 조잘대는 것이 정상아니야? 적어도 이 먼 곳까지 둘이서만 여행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부녀간이라면 말야. 그러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리게 마련이란 이야기지, 내 말은.”
어떻든 해수욕장으로 넘어가 바다 위의 그 시커먼 배들이 태풍을 피하기 위해 들어온 중국배들이라는 것을 알고서 다시 해풍장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마악 마당으로 들어서려는데 평상 쪽에서 깔깔거리는 웃음이 터지는 등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302호의 아줌마들이었다. 그리고 빨간셔츠가 돌아온 것이었다. 다른 아줌마들이 평상에 앉아 있는 가운데 어제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빨간셔츠가 그 앞에 서서 괴상한 몸짓을 해가며 그들을 웃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들어서자 뭔가 몸을 사리는 듯 했지만 층계를 올라와 우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다시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빨간셔츠의 일로 아침부터 술렁이던 해풍장 여관은, 비록 우리야 알고 있었다하더라도 302호의 아줌마들 뿐만 아니라 그곳에 묵고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걱정하고 뒤숭숭해 하던 해풍장 여관은 그렇게 해서 잠잠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엉뚱한 사건이 터진 것은 그 다음날 오전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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