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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노정길/야만인과 자연인, 그리고 생명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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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과 자연인, 그리고 생명공동체

▶노 정 길
석문면 초락교회 담임목사

체로키인디안의 혈통을 이어받은 ‘포리스터 카터’의 자서전적인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는 미국 남동부 아팔라치아 산맥에서 농경과 수렵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인디안들의 생활상이 그려져 있다.
카터의 어릴적 이름은 ‘작은 나무’. 그들은 시냇물과 어린사슴, 메추라기, 까마귀, 매, 심지어 꿀벌에까지 이름을 지어놓고 정답게 어울려 살아간다.
산이 깨어나는 소리를 들으면서 함정을 파놓고 야생 칠면조를 잡는데 걸려든 6마리 중 제일 작고 약한 놈은 식량으로 가져오고 튼튼한 3마리를 다시 놓아주는 그들. “내가 죽으면 저기 있는 소나무 밑에 묻어주게. 저 소나무는 많은 씨앗을 퍼뜨려 나를 따뜻하게 해주고 나를 감싸주었어. 내 몸이면 2년치 거름 정도는 될꺼야”라고 말하는 그들. 한줄기 세찬 바람과 함께 산봉우리 저너머로 사라져가는 노인의 영혼을 위해 “잘가게. 우리도 곧 뒤따라 갈 걸세”라고 다짐하는 인디언들은 정녕 영혼의 사람들이었다.
1938~39년에 걸쳐 백인들은 체로키인디안 1만4천여명을 황량한 땅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시켰다. 1,300㎞의 대여정에서 무려 4천명의 인디언들이 추위와 식량부족, 병으로 죽었다. 그러나 그들은 백인들이 제공해준 마차를 타지 않고 죽은 아이를 엄마가, 여동생을 오빠가, 남편은 죽은 아내를, 아들은 죽은 부모를 안고 걸었다. 길가에서 구경하던 백인들이 울음을 터뜨렸으나 마차에 영혼을 팔지 않고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눈물 한방울 없이 걸어갔었다.
하늘의 별을 노래하며 살아 숨쉬는 삼라만상을 형제로, 친구로 더불어 살아가던 인디안들에게 이런 만행을 저지른 백인들이 오늘의 미국사람들의 조상이었다. ‘죽이는 문명’을 가진 야만인들은 분명 백인들이 아닌가?
서구문명의 뿌리에는 기독교 신앙이 있다. 그중 ‘정복의 개념’은 잘못된 기독교 신앙에서 연유되었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신의 축복은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강탈하라는 것이 아니요, 관리하라는 사명을 주신 것이다. 노아의 방주에 사람 외에 혈육없는 모든 생물도 함께 탔었던 사실을 알아야 한다. 소위 ‘구원의 방주’라는 교회가 인간구원 뿐 아니라 혈육있는 모든 생물의 생명을 보존하는 ‘생명공동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우리 주위의 생명체들이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죽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지키고 보존하는 책임을 망각해선 안될 것이다. 영혼의 마음이 커지면 파괴하고 죽이는 육신의 마음은 작아진다고 믿는 영혼의 사람 인디안들의 기도가 너무나 아름답다.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중에서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것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틈에 감춰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없이 당신께 갈 수 있도록 하소서.

" 당진화력 5·6호기 증설 반대 석문면민 궐기대회를 치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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