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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1.08.06 00:00
  • 호수 382

흙처럼 질펀하게 도자기 마무리처럼 철저하게 - 도예작가 양광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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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그릇 만드는 일은 빈 마음 만드는 평생의 길

서른 두살의 양광용씨. 직업 전업도예작가.
상록문화제 기간중에 어울마당 한 코너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도자기를 선보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흙을 매만지며 잠시나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온 사람이다
그가 요즘 깨끗한 백자 다기를 만드느라고 무더위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비내리는 날 고대면 성산리에 있는 도자기작업장 <고산공방 designtimesp=16736>을 찾았을 때 그는 가족들과 둘러앉아 작업에 열심이었다. 비는 내리고 작업장엔 열정이 흘렀다.
하긴 그가 작업에 열심이지 않은 적도 없었다. 1년중 읍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상록문화제 어울마당 참여도 자신의 작업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세상과 만나는, 작업의 연장이었다. 미술인들의 정기전시회 때 말고 그를 읍내에서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두문불출 자기작업에 열중한 그를 동료나 선배들은 ‘성실한 작가’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그가 자기 탐색에 열중한 나머지 세상과 담을 쌓고 자의식의 세계에 경도되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는 세상과도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는 사회성을 지녔고 필요한 곳에 자신의 것을 내어줄 넉넉함도 지닌 사람이다. 청년으로서 사회에 대한 건강한 참여의식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사회적 직분이 ‘전업작가’임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사회와의 관계가 그것을 토대로 해야함을 알고 있다. 자신이 직접 몸담아야 할 곳과 마음으로 지지를 보내야할 곳이 어디인가를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서른 한 번째 전국 공예품대전에서 가장 큰 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동안 열심히 작업한 보람이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작품이라는 것이 그것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은 제 작품에 그만한 가치를 부여해준 사람들의 몫이지 순전히 제 실력 덕분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흔히들 그런 말을 하는데 이제야말로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충남도 대회에서 입선을 거쳐 전국대상이라는 영예를 얻은 그의 작품은 백자의 순결하고 깊은 멋을 생활다기에 불어넣은 세트상품이다. 차주전자와 다기, 술주전자와 술잔, 안주나 다과를 담을 수 있는 쟁반을 세트화하였다. 백자의 멋과 함께 이 작품의 포인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유액을 바른 쟁반과 주전자 뚜껑의 강렬한 색. 이 조화가 백자의 단순함 위에 새로운 균형과 전체성을 얻게했다.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수상연락을 받고도 농담인 줄 알았죠. 하지만 제가 정말 좋아서 한 작업이고 즐겁게 한 작업인 것만은 사실이에요.”
전업작가인 그는 전업작가답게 상충되는 많은 고민을 이야기했다. 작품과 상품, 원칙과 개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그의 이야기를 정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의 이러한 고민과 물음과 답변은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져야만 하고 스스로 답해야 하는 숙명적인 그것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상품화를 염두에 두지않은 퍽 기이하고 거친 작품들을 ‘작품’이라 부르고 왠지 규격화된 느낌을 주고 팔기위해 내놓는 작품들을 ‘상품’으로 부르는 위험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또 작품은 위대하고 상품은 그에 비해 천박하다는 선입견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양광용 씨는 이러한 경계에 대해 질문한다.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가? 작품이든 상품이든 우리는 그것을 대할 때 그것을 만든 작가를 빼놓고 생각한다. 작가가 거기에 무엇을 담았는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평생을 작업에 몸바친 작가의 단조로운 ‘상품’과 초보자의 기이한 ‘작품’도 그러한 경계로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하긴 그렇다.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과 ‘전쟁과 평화’는 당대에도 잘 팔린 상품, 즉 통속소설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거기에 작가의 위대한 정신, 작가만의 개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양광용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작품을 추구하고 즐거운 작업을 추구한다. 그러나 판매를 염두에 둔다. 왜냐하면 전업작가의 직업은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사는 밥그릇과 전업작가로부터 사는 밥그릇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밥그릇에 담긴 작가의 정신과 땀과 영혼이다. 하나씩 물레작업을 하고 섬세한 마무리를 하고 화덕에 굽는 동안 도자기 하나하나에 실리는 작가의 성찰과 고행이다.
양광용씨는 “빈 그릇”을 만들겠다고 한다. 빈 그릇? 그릇은 본래 비어있지 않은가.
“그 안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그릇을 만드는 일은 저 자신을 비어있게 만들어가는 일인 것 같아요. 작업을 할 때마다, 새로운 샘플을 만들 때마다 조금씩 저를 비워야 합니다. 그래서 그릇을 만드는 일은 저 자신을 만들어가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알 듯 말 듯하지만 왠지 코끝이 찡해진다. 밥과 국 공기세트 하나가 2만5천원이라는 게 아직은 비싸게 여겨지면서도 양광용씨의 얘기를 듣고 그 속에 담기는 한 작가의 인생을 생각하면 감히 비싸다고 말할 수 없어진다.
진정한 개성은 기본에 대한 완전한 통찰과 섭렵을 통해 저절로 거기서 자유로와지는 것이다. 양광용씨는 아직 자신은 기본에 충실할 생각이다. 개성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섣부른 일탈을 하고싶지 않다. 그것은 부족함을 낳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평생 쌓아가야할 작업과 삶을 모래위에 짓는 집처럼 어설프게 하고싶지 않다.
4년동안 대입을 치르다 군대를 다녀온 뒤 뒤늦게 시작한 도예공부. 그때까지 카메라를 들고 이 길이 내 길인가를 의심하다 휴학계를 낼 생각으로 찾아갔던 교수님의 한 말씀이 이 길의 문을 열어주었다. “할 말이 있으면 그것을 위해 땀을 쏟은 뒤에 하라”는 따끔한 꾸짖음이었다.
1994년 졸업을 앞두고 일찌감치 내려온 고향. 대학원 다니고 유학가고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맨땅에 머리박는 심정으로 자신을 향해 던진 도전장. 처음에 막막하기만 하던 작업은 도전과 또다른 도전을 통해 서서히 윤곽을 잡아갔다. 정작 해보고 부딪쳐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을 수많은 난관을 넘어서며 아, 이런 것이구나…조금씩 자신의 일을 체득해 나갔다. 고향에서 홀로 작업에 몰두하기로 한 것은 유행과 번잡함으로부터 의연해지기 위해 잘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불리한 여건에서 혼자있는 나태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늘 단단한 긴장속에 하루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아직도 기본의 위치에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다듬는다. 특히 그릇의 마감에는 선 하나에도 온 정신을 기울인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그것은 늘 원점에서 자신을 비우는, 그의 살아가는 작업에 다름아니다.
●전국공예품대전 수상작 전시
2001. 8. 10 ~ 8. 13
서울 삼성동 코엑스 대서양관
●전시문의
중소기업진흥공단 02-769-6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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