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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01.08 00:00
  • 호수 644

[인터뷰] 신리성지 김성태 신부 - “신앙의 쉼터를 넘어 영혼의 쉼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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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천주교의 못자리 역할을 했던 곳”
신년미사와 주민이 함께 하는 직거래장터 등 계획

 “신리성지는 천주교인들만의 성지가 아닌 ‘영혼의 쉼터’가 될 겁니다.”
 신리성지를 돌보고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의 김성태(34) 신부는 신리성지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상징성에 대해 “조선 천주교의 못자리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라며 신리성지가 천주교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의 많은 교우촌이 있지만 신리와 같은 특징을 보여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교우촌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산에 자리잡는데 신리는 평야이며 게다가 조선 천주교 교구장이었던 다블뤼 주교의 주교관까지 있었다는 사실은 이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나라에서 천주교를 박해하며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다블뤼 주교를 숨기고 피신시켰다는 것. 나라에서 주교 일행을 찾기 위해 일반 신자들을 잡아가기 시작하자 다블뤼 주교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신리 주민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다블뤼 주교는 순교하고 신리주민들도 결국 화를 피하지 못했다. 김성태 주교는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그 당시 순교자들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더욱 비참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미 집과 땅을 모두 뺏기고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씨 집성촌이었던 신리지만 이제 여기서는 더 이상 손씨를 볼 수가 없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성지 뒤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들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김성태 신부. 이 ‘신리의 이야기’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곳은 순례코스이기 때문에 순례자들이 오면 미사를 열고 있습니다. 물론 미리 연락해 미사시간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1일에는 송구영신 미사를 열었었지요.”
 매년 4월과 5월, 그리고 가을에 순례단의 방문이 가장 많다. 김성태 신부는 “대규모 순례단의 방문이나 특별한 행사에는 당진의 농산물들을 모아놓고 직거래 장터를 열 계획”이라며 “신자들은 물론 농민들도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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