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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만남] 김한풍 씨(읍내동)
“어려운 아이 돕는 캠페인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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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태어나 살다 8년 전 당진 찾아
“서울에선 지역신문의 존재 자체도 몰랐어요”

“이제 저도 당진시대 식구인걸요. 뭐든 손 필요하면 연락해주세요. 나이가 많아도 일도, 봉사도 가능합니다!”

읍내동에 거주하는 김한풍 씨는 서울 장충동이 고향이다. 8년 전 아는 지인이 일자리를 소개해주면서 당진을 찾았다. 처음엔 너무도 낯선 동네였단다. 길조차도 몰랐던 그에게 어느 날 회사에 도착한 당진시대 신문을 보고 읽기 시작한 일이 계기가 돼 지금은 그의 말처럼 ‘식구’가 됐다.

그가 서울에서 살 때만 해도 지역신문의 존재를 몰랐다. TV나 인터넷만 봐도 김 씨가 사는 지역인 서울의 소식이 늘 재빠르게 보도됐다. 하지만 당진에 내려오니 당진의 소식을 중앙 매체에서 접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당진 소식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지역신문이었다고. 그는 “서울 사는 친구들에게 지역신문을 읽는다고 하니 왜 읽냐고 그러더라”며 “나나 친구들 모두 서울 살 때는 지역신문을 잘 몰랐다”고 말했다. 

“당진시대 신문을 받으면 기사 하나하나 다 봐요. 보통 다른 중앙 신문들은 정치 이야기가 많은데 지역신문인 당진시대는 지역에 관한 다양한 소식이 많아요. 이렇게라도 당진 소식을 접하니 좋죠. 그러다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반갑고요.”

1952년 생으로 일흔이 넘은 그는 남은 여생을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오랫 동안 그가 몸담았던 페인트 작업 기술을 살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고. 현재 당진북부사회복지관을 통해 어려운 이웃 가정에 형광등 교체 봉사를 하고 있으며 이전에 반찬 배식 봉사에 나서기도 했단다. 그는 “필요한 곳에 찾아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오랫동안 손에 페인트를 묻히며 살아왔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 손을 잡고 간 은행에서 친절한 은행원을 보고 한 때는 은행 종사자가 꿈이었다. 이를 목표로 공부했으나 점수가 부족해 원했던 상고 입학의 꿈을 눈 앞에 놓쳐야만 했다. 그때 실망이 컸던 김 씨는 락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유명한 가수를 만나는 재미에 빠져 정신없이 젊은 날을 보냈다”며 “이후 군대를 제대하고 마음을 잡은 뒤 일을 해야겠단 생각으로 페인트 작업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김 씨는 수 십 년 동안 페인트 일을 해 왔다. 그는 “아직도 일을 할 수 있다”며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연락달라”고 전했다. 

한편 그는 작은 바람이 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시민 한 명이 1만 원씩이라도 모아 어려운 아이들에게 후원하는 캠페인이 있었으면 한다”며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캠페인을 당진시가 추진하고 당진시대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아이들이 당진에서 건강히 잘 자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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