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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이야기] 아름다운 정원 가꾸며 사는 이정원·박현경 부부 (순성면 본리)
자연과 함께 자연의 품 안에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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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당진으로, 시내에서 순성으로
조경 배워 직접 관리…17년차 베테랑
손수 가꾼 정원에서 아들 결혼식 치러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2020년 봄날,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아들이 결혼했다. 내가 꾸민 나의 정원에 사람들을 초대해 온종일 잔치를 즐기며 오롯이 축하를 나누는 건 오랜 꿈이었다. 다행히 신랑·신부 뿐만 아니라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유럽에서나 볼 법한 결혼식이라며 즐겁고 행복해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햇살이 비출 때나 사시사철 아름다운 이곳은 이정원(순성면 본리) 씨의 정원이다. 

아파트를 떠나 전원으로 

이름마저도 ‘정원’인 이정원 씨는 1989년 당진에 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본사로 발령을 받으면서 안양에서 태릉까지 출퇴근을 해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 첫차를 타고 출근해도 늘 가장 늦게 회사에 도착했고, 아무리 빨리 퇴근을 해도 밤 10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별 보며 출퇴근을 하던 도시에서의 삶에 지칠 때쯤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당진에 왔다. 우연히 재활용 사업의 기회가 찾아왔고, 막 개발이 시작되려던 당진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6촌 누나가 결혼 후 당진으로 와 이곳에 살고 있었다. 

읍내동 신성아파트 다음으로 당진에 두 번째로 지어진 채운동 한성아파트에 살았다. 그러다 아이들이 크면서 오랫동안 꿈꿨던 전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순성면 본리 지금의 집터다. 이곳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주인이 떠난 뒤 오랫동안 비워 있어 폐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3000여 평 집 주변은 각종 농기구와 폐자재들로 너저분했다. 아내 박현경 씨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다”며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17년 동안 손수 만들어간 정원 

아파트 건설사에 다녔던 이정원 씨는 그동안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봐왔던 경험으로 집을 리모델링 하고 마당과 주변을 꾸며나갔다. 영산홍 몇 그루로 시작했던 마당은 꽤나 울창하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거듭났다. 크고 작은 조각상과 처마에 매달린 풍경들, 작은 분수대와 연못 등 작은 수목원에 온 듯하다. 지난 17년 동안 하나하나 이정원 씨가 만들어나간 작품이다. 그는 정원을 가꾸기 위해 일부러 조경을 배웠는데, 이제는 다양한 모양의 수형을 직접 만들어낼 정도로 전문 조경인 수준이 됐다. 

물론 이렇게 집과 정원을 가꾸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사업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집을 돌봐야 했다. 어찌나 풀이 빨리 크는지, 잡초는 왜 그리도 생명력이 질긴 것인지 쉴 틈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새벽까지 풀 매고 정원을 관리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그리고 이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난 17년 동안 집과 정원을 가꾸면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기록했다. 몇월 며칠에 무엇을 심었는지, 언제 꽃이 피었는지, 얼마를 주고 자재를 샀는지 등 일종의 영농일지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써내려간 일지가 모여 하나의 데이터베이스가 됐다. 

“처음엔 작년에 뭘 했었는지, 이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려고 영농일지를 적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이 집에 대한 모든 게 기록으로 남은 거죠.” (이정원 씨)

남편은 정원을, 아내는 동물을 

이정원 씨가 이렇게 정원을 가꾸는 동안 아내 박현경 씨는 동물을 돌봤다. 원래 기르던 두 마리의 반려견을 몇 년 전 떠나보낸 뒤, 집 주변을 떠도는 7~10마리 가량의 유기견과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서 정성껏 돌보고 있다. 이밖에 금계 등과 같은 조류도 이 씨의 정원에 마련된 우리에서 자라고 있다. 사료값이 만만치 않지만 소중한 생명들을 외면할 수 없단다. 

집 안에는 두 개의 커다란 수족관에 큰 물고기 여러 마리를 기르고 있고, 한쪽 벽면에는 이정원 씨가 직접 채집한 수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씨는 “젊었을 때부터 자연과 벗 삼아 사는 삶을 동경했다”며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힘들었던 회사 생활이 좀 더 빨리 우리 가족의 전원생활을 앞당겼다”고 말했다. 

“서울에 살다가 친구들에게 당진에 내려가 살 거라고 했을 땐 다들 걱정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들 부러워해요.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고, 책 읽는 시간도 많아지고. 초록빛 자연을 오래 봐서 그런지 시력이 좋아져서 오랫동안 썼던 안경도 이젠 쓰지 않아요.” (박현경 씨)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이 아까워 사람들은 부부에게 카페나 식당을 운영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미술관으로 활용해보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늑한 보금자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계획은 없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전원에서의 행복한 삶을 나누고 싶다고. 

이정원 씨는 “나중에 우리가 없더라도 후손들이 할아버지·할머니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공간으로 남길 바란다”며 “사람들에게 힐링과 치유의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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