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어느 시점에서 인생을 끝맺으며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저에겐 의미가 있는 당진에서 전시를 열었죠. 성원에 감사하며, 앞으로 우리 민화를 많이 아껴줬으면 합니다.”
박근자 작가의 회고전 ‘민화 그 소망의 숨결’이 지난 15일부터 21일까지 당진문예의전당 전시실에서 열렸다.
박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과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호서고에서 미술 교사로 지난 1973년부터 1976년까지 근무했다. 동료였던 고광일 지리 교사와 결혼 후 서울로 떠났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잠시 붓을 놓았다. 아이를 키우고 숨을 돌릴 수 있을 때 박 작가가 다시 그린 그림은 전공했던 서양화가 아닌 민화였다.
그는 “민화는 우리 몸에 녹아 있는 것”이라며 “민화에서 다루는 소재들을 어렸을 때부터 접해왔기에 익숙했다”고 말했다. 1999년에 개최한 전시 도록에도 박 작가는 “그림을 전공하고 색과 선, 공간의 미학에 대해 생각하며 지내오는 동안 조금씩 가슴벅찬 아름다움, 생활의 어우러짐, 그리고 이름없는 장인들의 인내에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됐다”고 설명했따.
그렇게 박 작가는 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모란꽃과 십장생, 시원한 연당과 물고기, 풀과 곤충, 새 등의 그의 붓끝에서 태어났다. 그렇게 평생을 작업한 민화 작품이 회고전을 통해 전시됐다.
회고전에는 약 20여 개의 작품이 전시됐다. 12곡의 병풍에 담은 대작도 여럿 선보여졌다. 그중 <금강산도>와 <정조 화성 능행도>는 관객을 압도했다. 작품 <금강산도>에는 아름다운 절경의 표상을 진경시대의 제한적 기법으로 그려졌다. 금강산의 사계절 전경을 12폭의 파노라마로 담아 낸 작품이다.
한편 <정조 화성능행도>는 역사서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이 역시 거대한 12폭 병풍에 표현됐다. 화면의 구성이 웅장하며 세부 묘사는 정교하다. 어디에도 붓 날림 하나 없이 깔끔한 작품이다. 또한 안정감있고 온화한 색채가 사용돼 궁중행사도의 품위까지 더해졌다.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데만 하루 6시간씩 5개월을 쏟아야 한다고. 이렇게 정교한 기술로 표현된 작품들이 전시돼 민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
박 작가는 65세에 암을 발견하고 그동안 5년 동안 다시 작품 활동을 멀리해야 했다. 조금씩 건강을 되찾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전만큼 대형 작품을 만들어 낼 순 없었다. 암 수술 후에는 주로 베갯모를 그려왔다. 작품 설명에 따르면, “사람은 인생 1/3 동안 잠을 자고 이때 베개와 함께한다”며 “베개가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기에 고맙고 소중한 물건”이라고 말한다. 이어 “원앙침, 봉황과 공작, 십장생, 모란, 벚꽃, 무궁화, 수복문자 등 다양한 베갯모의 무늬는 꿈을 현실로 이뤄내는 염원의 표현”이라며 “그 아름다운 염원은 곧 현실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박 작가의 베갯모는 마치 손으로 한 땀 한 땀 뜬 것 같이 살아 있다. 색 역시도 곱고 화려하다. 그는 “75세에 이르니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색 조화가 나왔다”고 말했다.
“전시 오프닝에 오랜 제자들이 많이 왔어요. 당진은 제가 젊었던 20대 때 10대의 아이들을 가르친 곳이면서 가장 작품 활동을 열심히 했던 곳이에요. 이곳에서 회고전을 열어 의미가 큽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민화가 많이 알려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