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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3.07.17 15:50
  • 호수 1464

[문화칼럼] “너 생전에 합덕방죽에 가 보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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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창고 합덕제의 빗장을 열다 -

장영란 당진시 문화해설사

 

사람이 죽어서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가면 “너 생전에 합덕방죽에 가 보았느냐?”라고 물어 보는데 “예, 가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니요, 가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생전에 무엇을 하였기에 그 유명한 합덕방죽도 구경 못했느냐?”하며 꾸지람을 들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당진군지>

수리(水利)는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는 기본 조건이다. 합덕제에서 수리는 물을 농사짓는 데 사용하거나 식수로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벼농사 위주의 농업을 장려하였던 우리는 전통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치수 시설을 만들어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였다. 

수리시설의 가장 큰 역할은 농작물의 성장에 필요한 물과 알맞은 토양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물을 공급해 주는 ‘관개’이다. 관개는 농작물의 성장을 촉진하여 수확량과 품질을 높여주고, 논에 수분과 비료 성분을 공급하여 준다. 또 보온 효과로 냉해를 피할 수 있다. 산성 또는 알카리성 물질이나 염분 등 해로운 물질의 농도를 희석시키고 씻어냄으로써 흙속의 유해물질을 제거한다. 논에 물을 담게 되면 잡초의 번성을 억제하고 병충해의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물의 이용으로 천년 합덕제의 명성이 저승까지 알려지게 된 것이 아닐까?

이렇게 훌륭한 역할을 다했던 당진합덕제의 첫째 보물은 무엇일까?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다. 조선 3대 저수지인 합덕방죽의 기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후백제(900~936)를 건국한 견훤(867~936)이 기병 및 보병 9000명과 군마 500여 마리(또는 6천 마리)를 합덕 성동산에 주둔시키고 군마의 음용수 및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한 관개시설로 못을 만든 것이 합덕방죽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성동산성 내부에서 출토된 9세기 주름무늬 작은 주전자 파편은 견훤의 활동시기와 일치하여 견훤 축조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합덕 방죽의 역사는 중수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767년, 영조 43년의 연제중수비(蓮堤重修碑)를 비롯하여 1913년 10월 연제를 석축으로 쌓은 기록, 연제석축비까지 8기 비석군의 내용은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다. 현재 1771m의 제방이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저수지는 23만㎡가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2017년에는 세계관개시설물유산에도 등재되어 천년 넘게 합덕 평야의 젖줄이었던 수고를 인정받고 있다.

두 번째 합덕제의 보물은 자연생태환경이다. 지난 2019년 2월에 보고된 <합덕제 생태계종합자원조사 연구용역>에 의하면 합덕제와 그 주변지역의 동·식물상 현황조사 결과 식물은 129종이다. 동물은 포유류 4종, 양서·파충류 6종, 조류 37종이 조사되었고, 법정보호종은 흰이마기러기(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 큰기러기(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큰고니(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천연기념물)로 3종이 합덕제 조사시기 중 관찰되었다. 큰고니의 경우 합덕제 내에서 취식활동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곤충류의 경우 52종, 담수무척추동물은 17종, 어류 9종으로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연구의 배경은 2016년 서해안 복선전철 공사중 발견된 한국 고유종 금개구리가 세계적 희귀종으로 알려져 있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선택된 곳이 합덕제다. 2017년, 당진 수청2지구 도시개발사업 중 발견된 맹꽁이도 합덕제로 이주해 왔다. 이 두 종은 모두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이다. 생태계는 굉장히 정교하고 복잡해서 핵심종 하나가 사라지면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다행이 합덕제는 벚꽃, 연꽃, 버드나무, 큰고니와 노랑부리저어새, 수원청개구리와 금개구리, 맹꽁이를 비롯한 많은 생물자원의 천국이다. 보물창고인 것이다.

세 번째 합덕제 보물은 활용과 향유의 장소이다. 예로부터 연꽃이 많이 피어 연지, 또는 연호방죽이라 부르는 합덕제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연꽃의 성지로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연은 골칫거리 취급을 받던 때도 있었다. 저수량을 줄여 농사에 피해를 준다고 상극인 칡넝쿨을 이용해 연을 제거하려 했었다. 대부분 백성이 배고팠던 때의 이야기다. 그 후 풍요의 합덕평야는 예당저수지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게 되었고, 수리시설의 기능을 다 하였다. 그런 합덕제는 우리나라 최초로 경지정리가 되어 농민들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잊힐 뻔했지만 이제 다른 방법으로 합덕제를 기억하기로 했다. 합덕수리민속박물관, 생태관광체험센터, 농촌테마공원이 새로이 기념하는 장소가 되어 역사와 문화, 자연과 생태를 교육하고 체험하고 향유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뿐만 아니라 ‘버그내 순례길’코스에도 포함되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담게 되었다. 멋진 합덕제다.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걷기는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다”라고 했다. 걷기 좋은 길, 철학자의 길, 합덕제는 향유의 길이다. 맨발로 걷는 이는 건강을 누리기 위함이요, 바람과 풍경을 함께하고 싶은 이는 설렘을 누리기 위함이다. 생각해보니 합덕제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주고 있다.  

이런 선물 같은 문화유산을 기억하고, 활용에 참여하고, 향유할 수 있는 이는 행운아고 행복한 이다. 나중에 염라대왕 앞에서도 당당히 대답하시라. 합덕제를 충분히 즐기다 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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