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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 3] 송악읍 기지시리, 세계문화유산이 된‘틀모시 줄난장’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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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한진포구로 가던 길목…번성했던 기지시장
“줄난장 열리면 3년 먹고 살 정도로 인파 몰렸지”

 

<편집자주> 당진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마을의 모습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미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 상황에 놓인 마을 등 기록해두지 않으면 금세 잊혀질지도 모르는 마을들이 존재한다. 마을의 전설과 옛 지명, 보호수를 비롯한 자연화경, 열녀문·효자비 등 다양한 마을의 이야기와 마을이 가진 자원을 발굴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마을의 이야기를 신문 지면과 유튜브 영상을 통해 기록한다. 

※  이 기사는 2023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으로 취재·보도합니다. 기사 내용은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드론으로 촬영한 송악읍 기지시리 전경
드론으로 촬영한 송악읍 기지시리 전경

 

송악읍 기지시리는 그야말로 줄다리기의 고장이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지시줄다리기는 마을주민들의 오랜 추억이자 자부심이다. 해마다 열리는 기지시줄다리기 축제를 통해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나, 주민들이 기억하는 기지시줄다리기는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 

기지시줄다리기가 1973년 도지정 문화재 지정을 시작으로 지자체나 정부에서 관리하기 전에는 오롯이 주민들의 손에서 ‘축제’가 이뤄졌다. 당시엔 ‘틀모시 줄난장’이라고 불렀는데, 10년에 4번(2~3년에 1번) 들어오는 윤년이 되면 기지시리 주민들과 상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대규모 난장을 펼쳤다. 지금처럼 보존회나 축제위원회가 없었기 때문에 번영회·재향군인회 등 지역 사회단체가 번갈아가며 행사를 주관했다.

1972년 틀모시 줄난장 당시의 모습
1972년 틀모시 줄난장 당시의 모습

 

수많은 인파 몰리던 

‘틀모시 줄난장’

지금은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인근의 줄 제작장에서 줄을 만들지만, 과거엔 기지시 장옥이 늘어선 가장 번화했던 길에서 만들었다. 줄의 크기는 예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한데, 길이 200m, 두께(지름)가 1m에 이르는 줄을 볏짚을 꼬아 만들어 기지시장을 ㄷ자로 돌며 끌고 나가 지금의 송악문화스포츠센터인 공동묘지 앞에서 줄다리기를 벌였다. 

기지시리 출신인 구자동 기예능보유자는 “틀모시 줄난장이 벌어지면 수많은 인파가 기지시에 몰리는데, 모든 상가가 장사가 잘 되라고 장옥을 ㄷ자로 돌아 공동묘지 앞까지 줄놀이를 나갔다”며 “그 모습이 어찌나 장관이었는지, 당진사람들 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틀모시 줄난장을 보러 이곳에 모여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줄다리기를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로 공동묘지에 묘는 안보이고 묘지 위로 올라간 사람들의 머리만 보일 정도”라고 덧붙였다. 

1976년에 촬영한 기시지줄다리기 줄꼬기 장면
1976년에 촬영한 기시지줄다리기 줄꼬기 장면
기지시줄다리기 옛 사진
기지시줄다리기 옛 사진

 

김기원 노인회장은 “구경하던 사람들조차 기지시줄다리기를 보면 절로 뛰어들어 줄을 다릴 수 밖에 없었다”며 “그때는 사람들이 새끼를 꼬아 곁줄을 직접 만들어와서 너나 할 거 없이 줄다리기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이어 “줄난장이 약 2~3년에 한 번씩 열렸는데, 이 행사 한 번 하면 

3년을 먹고 산다 할 만큼 사람이 정말 많이 와서 상인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며 “일대에 양조장 5개가 있었는데 양조장 술이 모두 바닥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2013년 줄다리기 중 큰줄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로 안전을 위해 큰줄 안에 나일론줄을 넣어 만들기 시작했고, 그 무렵 줄을 끌고 시연장까지 오는데 너무 많은 힘이 들어 줄 아래 바퀴를 넣어 옮기고 있다. 

또한 지금은 물윗마을인 수상(水上)이 이기면 나라가 평안하고, 물아랫마을인 수하(水下)가 이기면 풍년이 든다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본래는 ‘수하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만 있어 힘 좋은 청년들이 수하에서 줄을 당기도록 해서 수하가 이길 수 있게 했다고 한다. 

2019년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체 장면
2019년 기지시줄다리기 민속축체 장면
줄다리기를 위해 시연장으로 줄을 옮기고 있다.
줄다리기를 위해 시연장으로 줄을 옮기고 있다.

 

길쌈 관련 지명 많아

이렇듯 세월이 변하면서 많은 것들이 변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주민들을 하나로 묶고 화합하고자 하는 줄다리기의 정신만큼은 500년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큰줄을 꼬는 줄틀은 아직도 연못에 담가 보관한다. 

구자동 기예능보유자는 “줄틀은 참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물속에 있어야 더 튼튼해진다”며 “햇볕에 노출되면 갈라져 쓸 수가 없어 연못에 넣어 보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줄틀만 있으면 아무리 줄이 커도 다 꼴 수 있어 기지시줄다리기에서 매우 중요한 기구”라고 말했다. 

기지시줄다리기 당제에 쓰일 당주를 담그는 모습
기지시줄다리기 당제에 쓰일 당주를 담그는 모습

 

‘기지시’라는 지명도 여기에서 유래됐다. 한자로 베틀 기(機) 연못 지(池) 저자 시(市) 자를 쓰는데, 순우리말로 ‘틀못’을 의미하고 구전에 의해 ‘틀모시’ 또는 ‘틀무시’로 불렸다. 베틀을 담가둔 연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가마솥에 삼을 삶았다는 ‘가마못’이나, 자를 의미하는 ‘흥척골’, 베를 짤 때 꾸리를 담아 좌우로 드나드는 북집을 말하는 ‘북당골’, 가위를 의미하는 ‘가세울’ 등 길쌈과 관련한 지명이 많다. 옛날 이 마을에는 방직업이 번창해서 각 가정에서 모시 길쌈을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장경환 전 이장은 “우리가 어렸을 땐 마을에서 길쌈을 많이 했다”며 “이와 관련한 지명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당집이 위치한 국수봉
당집이 위치한 국수봉

 

육지에서 바다로 가던 길목 

한편 마을엔 큰 샘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 국수봉에는 당집이 있어 주민들에게 신성하게 여겨지던 곳이다. 이곳은 기지시줄다리기 당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서기 이전에는 국수봉에 오르면 기지시리는 물론 당진까지 내다 보일 정도였다고. 

기지시리는 육지와 바다를 연결하는 길목이어서 예로부터 매우 번성한 곳이었다. 육지에서 한진포구로 가는 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농수산물·공산품 등 수많은 물자가 모여들어 한 달에 장이 12번이나 설 정도였고, 장의 규모 또한 매우 컸다. 소를 파는 우시장이 있었고, 평택·홍성·예산 등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교통 여건이 좋지 않았던 시절, 대규모 기지시줄다리기 난장이 펼쳐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지리적·환경적 요건 때문이지 않았나 추측할 수 있다. 

과거 줄을 만들었던 기지시 장옥
과거 줄을 만들었던 기지시 장옥
송악읍소재지 종합정비사업으로 지난 2019년 기지시 장옥을 다목적 광장으로 조성했다.
송악읍소재지 종합정비사업으로 지난 2019년 기지시 장옥을 다목적 광장으로 조성했다.

 

그러나 도로가 포장되고 당진까지 길이 이어지면서 1970년 중반 이후부터 기지시리 장터가 쇠퇴하기 시작해 지금은 더 이상 장이 서지 않고 장터 문화도 모두 사라졌다. 현재는 옛 장옥터가 다목적 광장으로 변했고, 주변에 낡은 상가들이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10여 년 전부터는 기지시 일대에 도시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현재 기지시리 주민들은 8000명이 넘는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학교나 병원 등 인프라가 부족해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마을을 떠나는 주민들이 많다. 

이병옥 이장은 “아파트가 많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지만, 정주여건이 부족해 평택·천안·아산 등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많다”며 “버스 승강장 일대 주차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살기 좋은 기지시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왼쪽부터) 기지시리 주민인 최인기, 장경환, 김기원, 구본형, 구자동, 이병옥 씨
왼쪽부터) 기지시리 주민인 최인기, 장경환, 김기원, 구본형, 구자동, 이병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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