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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읍면소식
  • 입력 2023.08.31 16:01
  • 수정 2023.09.04 10:32
  • 호수 1467

[우리마을 이야기 4] 순성면 본2리
순성의 근본(本)이 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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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이 자라 닮아‘자라미’로 불려
독립운동가 이종원 선생의 고향
매주 마을주민 모여 서각 배워 전시

 

<편집자주> 

당진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마을의 모습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미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 상황에 놓인 마을 등 기록해두지 않으면 금세 잊혀질지도 모르는 마을들이 존재한다. 마을의 전설과 옛 지명, 보호수를 비롯한 자연화경, 열녀문·효자비 등 다양한 마을의 이야기와 마을이 가진 자원을 발굴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마을의 이야기를 신문 지면과 유튜브 영상을 통해 기록한다. 

※ 이 기사는 2023년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으로 취재·보도합니다. 기사 내용은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을 앞으로는 남원천이 흐르고, 매봉산이 아늑하게 품고 있는 순성면 본2리는 지형이 자라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자라미’라고 불린다. 실제로 남원천에는 자라가 서식했는데, 주민들은 예부터 자라를 신성하게 여겼다. 

“남원천은 물도 아주 맑고 모래가 참 깨끗했어요. 모래성을 쌓으려고 모래를 긁어내다 보면 큰 자라가 나오곤 했죠. 작은 자라는 수없이 많았을 거예요. 물고기도 풍부했고요.” (주민 김종국 씨)

본2리는 원래 당진군 가화면(嘉禾面) 오산리(五山里)에 속한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공수동 일부와 합쳐져 당진군 순성면 본리가 됐다. 매봉산에서 5개의 산줄기가 내려왔다고 해서 ‘오산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이밖에 본2리에는 안골, 파아골, 따복골, 구억말 등의 자연부락이 형성돼 있다. 

본2리에는 ‘박문수와 말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사 박문수가 퇴미산 아래를 지나가다가 귀신이 말이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놨는데, 박문수가 불 3개를 붙여 날렸더니 말 다리가 땅에서 떨어져서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매주 서각교실 열려

본2리에서는 서각교실이 매주 운영되고 있다. 3년 전 가가호호 문패 달기 사업을 추진하던 중 주민들이 직접 서각을 배워 문패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서각교실이 이어져왔다. 본2리 주민들 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에서도 서각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하고 있다. 

서각교실을 제안한 강인순 부녀회장은 “남편 고향으로 돌아오니 마을회관 공간이 활용되지 않고 있어 어르신들이 서각을 배우면 좋을 것 같았다”며 “치매 예방과 정서 안정에 도움이 돼 앞으로도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3년째 서각을 배우고 있는 주민들의 솜씨가 날로 성장해 얼마 전에는 시청 앞에서 순성면을 대표로 서각 전시에 나서기도 했다고. 

 

이종원 선생의 흔적 남아 있어

한편 본2리는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종원 선생의 고향이다. 경주 이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본2리에는 독립운동가인 이종원 선생의 후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고, 할아버지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이종원 선생은 면천공립보통학교(현 면천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반장으로서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이끈 인물로, 학교에서 줄곧 1등을 하던 모범생이었다. 그는 만세운동 이후 학업에 매진해 서울사범학교를 졸업했고, 해방 후 당진여고 교장으로 퇴임했다. 특히 이종원 선생은 만세운동의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의 기록이 없었다면 3.10만세운동은 단편적인 구전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본지 제1246호 ‘면천 송림에서 울려 퍼진 독립의 노래’ 기사 참조>지금도 이종원 선생이 살던 200년 넘은 고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그의 집은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어 ‘느티나무집’으로 불렸고, 직접 일꾼들이 무거운 돌덩이를 가져다가 만든 연자방아가 있었는데, 현재 집 앞 풀숲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종원 선생의 생전 모습과 일제강점기 서적 등 중요한 자료들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후손들은 그저 안타까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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