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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3.10.08 16:40
  • 호수 1474

[의정칼럼] 거문오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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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연 당진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제주도의 거문오름은 유일하게 세계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하루 일정 인원만 입장이 가능하고 전문해설사와 동행을 해야만 하며 더욱이 한번 입장을 해서는 정해진 길만을 다녀야 하니 관광보다는 사람을 피해 잠궈 놓은 곳이다.

거문오름의 유래는 검게 보이는 오름이란다. 원시림이 울창해 상시 검게 보여서였다나. 제주도민들이 여기를 신성시 여겨서 함부로 들어가질 않은 까닭이란다. 거문오름은 만장굴 등 제주도의 용암동굴을 만든 분화구로 한쪽 면이 터진 형상인데 들어가 보면 왜 제주도민들이 이곳을 신성시했는지 수긍이 간다. 한번 미끌어지면 흙 특성상 다시 올라올 수 없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죽기 십상이고 숨골이라는 곳곳의 용암굴이 무너진 돌무더기에는 스산한 냉기와 함께 안개가 고여있으니 신령스럽다. 

사람들의 접근이 쉬운 터진 입구 쪽에는 거대한 삼나무 숲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 조림한 곳이라 했다. 조림한 지 100년이 가까워가는 이 숲에 해설사는 귀를 기울여보라 했다. 시원한 바람 소리. 더 들어가 거문오름 한가운데에서 해설사는 또 귀를 기울여보라 했다. 바람 소리, 나뭇잎 사이로, 나무와 풀들의 소리 사이로 소곤소곤하는 소리들…. 작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날개짓 소리, 숲속은 숨죽인 수다쟁이들로 그득했다. 그러고 보니 삼나무 숲에서는 둥지를 못 보았다. 삼나무 숲은 텅빈 숲이었다. 해설사는 단일 수종으로 돼있는 숲은 일년에 한번 꽃피고 열매를 맺으니 동물들이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거문숲의 원시림은 사시사철 꽃피고 열매 맺고 새순을 내니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연중 한번 풍요롭게 먹고 나머지는 굶으면서 버틸 수는 없으니 말이다.

지방 도시를 살리는 전략과 아이디어라는 부제가 달린 ‘인구소멸과 로컬리즘’에는 ‘먹을 것이 없어 서울에 갔더니 둥지가 없어 알을 못난다’는 구절이 있다.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 도시로 가는 것이 농촌의 인구감소 더 나아가 국가 전체의 인구감소 원인이란다. 또 떠나는 이유는 지방에 먹을 것이 없어서이니 먹을 것을 만드는 것으로 청년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평생 먹을 것이 있어야 노후가 보장되고 노후가 보장돼야 자식을 나을 것이 아닌가? 예전처럼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요즘 자식들의 심성이 글러 먹어서가 아니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진화의 주체는 생명체가 아니라 유전자이고 생명체는 유전자 보전을 위해 프로그램된 기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니 종족 보존의 욕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유전자 보전을 위한 한 방편이다. 자기 앞가림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자식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걸고 하는 도박이다. 그러니 자식을 갖지 않거나 만일 자식이 있다면 자식에게 온갖 능력을 장착시키는 것은 부모들의 공포심에서 유발된 것이다. 먹을 것이 없는 삼나무 숲에서 기회가 왔을 때 다른 종보다 많은 먹이를 모을 수 있는 기술을 장착시켜야만 새끼가 둥지에서 떠날 수 있다. 그래야 좁아터진 둥지에서 다 큰 자식까지 먹여가며 함께 굶어 죽는 참사를 막을 수 있다. 

삼나무 숲에는 아무리 많은 새집을 만들어 놓아도 소용이 없다. 인근의 원시림에 둥지가 모자라 어쩔 수 없어 이사 온 새들이 출퇴근용으로 쓰거나 결실의 계절에 잠시 별장으로나 쓰이려나. 그도 그럴 것이 인근에 우거진 원시림에 부족한 것이 있어야 이사를 하지. 그러니 당진의 인구 유지는 수도권에 가깝다는 지리적인 이점에 기인하는 것이다. 인구감소의 지리적 마지노선인 서산, 당진, 아산, 천안. 원주, 춘천을 보면 확실히 보인다. 특별히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는 단순하고 유치한 출산장려정책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창원이나 제천처럼 대출받은 주택자금 1억 원을 아이 셋을 나으면 지자체가 대신 갚아주는 둥지 만들어주기도 인구 증가 정책이 될 수는 없다. 

뭍 생명을 번성하게 하는 방법은 오로지 그들에게 채집할 수 있는 먹이가 상존하고 은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어떤 농사를 짓더라도 일한 노동만큼 제값을 받는 시장의 조성, 작은 기업에 입사에 열심히 일하면 삶이 보장되는 지역이 그 해법이다. 과도한 물류가 상존하고 비용을 생산자가 부담하는 농업, 작은 수급 불안정에도 폭락하는 시세는 벼농사로 농민들을 내몰고 젊은 예비 농부는 먹이를 찾아 도시로 떠난다. 도시로 간 대부분의 젊은이는 하청, 재하청 노동자가 되어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노동력 빼먹기에 당하거나 건별로 시간이 돈이 되는 미래를 저당잡힌 플랫폼 자영업자가되어 결국 출산을 포기한다. 

시장의 실패가 삼나무 숲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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