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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2 20:55
  • 호수 1485

한 권의 책에 담은 30년 봉사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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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자·홍광표·강종순 원로봉사자
30여 년 이어 온 봉사…자서전으로 기록

 

당진시자원봉사센터가 세 명의 원로 자원봉사자의 자서전을 발간했다. 기록된 봉사시간만 한화자 씨는 1만 8000시간에 이른다. 홍광표·강종순 씨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봉사를 멈추는 날이 비로소 죽는 날이 될 것”이라며 남은 일평생도 봉사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이렇듯 수십 년에 걸쳐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온 이들의 생애와 봉사하는 삶이 책자로 발간됐다. 

강종순, 홍광표, 한화자 세 자원봉사자의 자서전은 빨강, 파랑, 노랑 세 가지 색으로 표지색이 정해졌다. 분명 서로 다른 색이지만, 다른 색과 어울리고 또 서로 합쳐가면서 새로운 색을 만들어 낸다. 이들의 삶도 그렇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손을 내밀기도 하고 때로는 도움을 받아 가면서 봉사를 이어왔다.

4000시간 이상 원로 봉사자 

자서전 발간 사업은 당진시자원봉사센터의 2023년 기록물 관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이 사업은 1년에 걸쳐 진행됐다. 김선순 봄봄문학상담연구소 대표가 총괄을 맡았으며 박희란, 유내영, 원유영, 임정숙 작가봉사자가 글을 엮었다. 지난 4월 첫 회의를 시작으로 세 차례의 워크숍 그리고 10회기에 이르는 자서전 교육이 진행됐다.

 

김선순 대표는 “자서전 쓰기는 원로봉사자와 작가봉사자 간의 세대를 공감하고 아우르는 경험의 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원로봉사자들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진솔하게 내어 놓으며 그 속에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찾고, 작가봉사자는 봉사에 대한 의미를 새롭고 견고하게 다졌다”면서 “봉사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만큼 자기를 스스로 돌보고 성찰하게 하는 것처럼 두 봉사자의 삶이 만나 풍성해졌다”고 말했다.

  한화자 봉사자 이야기

한화자 씨의 자서전 제목은 <희망과 기쁨을 전하는 안개꽃처럼>이다. 책 제목을 무엇으로 지을지 남편(이홍근 전 충남도의원)에게 물어보니 ‘안개꽃’을 던져줬다. 장미꽃이나 다른 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안개꽃은 주변의 꽃을 돋보이게 한다. 꽃말 역시 ‘맑고 깨끗한 마음’이다. 

한 씨가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91년 적십자봉사회에 가입하면서부터다. 그 전에 딸들이 걸스카우트와 아람단 활동을 하면서 봉사에 다가가게 됐다. 그는 “봉사하는 아이들 뒤에서 부모로 함께 단원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자녀들이 중학교에 가면서 스카우트 생활을 접었고, 그 즈음 친구(강천)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 적십자봉사회다. 한 씨는 “우리 아이들이 걸스카우트와 아람단 활동을 하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봉사하는 것을 봤다”면서 또한 “나도 봉사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따라 움직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적십자 당진읍봉사회장에서 당진시여성단체협의회장까지 맡았던 그는 적십자 당진지구협의회장까지 맡게 됐다. 한사코 자리를 거절했으나 추대됐고, ‘필요한 곳이면 열심히 봉사하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때 시범경로당부터 경로잔치 봉사관 개관, 급식차 유치, 외국인 근로자 쉼터 등을 운영했다. 이외에도 저소득층 동거부부, 국제부부 합동 결혼식과 백혈병 어린이 돕기, 여성발전기금 마련 등 봉사를 이어왔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는 1998년 홍수로 인해 당진이 물바다가 됐을 때다. 한 씨는 “집까지 물이 차 있었고, 밖을 나가보니, 마치 밀물 들어오듯이 물이 시내까지 밀려오고 있었다”며 “가장 먼저 적십자 회원들이 수해 현장에 나가 수해 복구 작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어 “밤낮없이 봉사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이 봉사 현장에서 적십자가 가장 눈에 띄더라며 고생했다고 꽃다발을 줬다”면서 “그 이후로 남편도 봉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봉사활동으로 그는 지난 2017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하고, 올해는 당진시민대상 수상까지 했다. 한 씨는 자신의 삶에서 봉사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을 마시며 삶의 고난을 이겨냈다”며 “봉사를 하면서 내 삶에 얼마나 많은 기쁨과 행복을 받았는지, 지혜와 사랑의 힘을 알게 됐는지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졌다”고 자서전을 통해 전했다. 

  홍광표 봉사자 이야기

홍광표 씨는 30여 년간 쌓아온 봉사가 1만 시간을 앞두고 있다. 1995년 6월 적십자와 함께 봉사를 시작한 것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봉사해온 그의 삶이 고스란히 책자에 담겼다. 

홍광표 씨는 행정리 옥돌고개에서 태어났다. 그가 두 살일 때 아버지는 6.25 전쟁 후유증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하늘은 할머니였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 바쁜 어머니 대신 할머니가 그에게 사랑을 줬다. 그는 “봉사의 삶을 살게한 것도 할머니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그의 오랜 기억 속에 남은 할머니 모습은 음식이 있다면 하나씩 포장해 이웃에게 나눴던 것이다. 동네 어른들은 홍 씨를 만날 때마다 “네가 찹쌀떡집 손자로구나”라고 말하기도 했단다.

봉사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1991년 당나루로타리클럽에 가입하면서였다.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봉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공직자 중심으로 창립된 늘푸른적십자봉사회 회원에 이어 지난 2018년에 적십자 당진지구협의회장으로 취임했다. 

적십자 당진지구협의회장을 맡던 당시 다양한 봉사를 이어왔다. 당시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재난 상황에 맞는 봉사를 찾아 다녔다. 봉사를 위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충남지사를 수시로 찾아다녔단다. 그 외에도 두 발로 뛰어 다니며 기업 후원을 가져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러한 노력에 성과도 빛을 발했다. 임기 중에 재난재해로 사용될 재난구호 급식 차량 배정과 시민봉사센터 신축을 이끌었다. 이외에도 당진을 너머 전국 단위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봉사원들과 나섰고, 청소년 장학금 등 적십자 활동 범위를 대외적으로 넓히는 일을 해 왔다. 

이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봉사는 집 없이 차에서 머물면서 떠돌던 부자(父子)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건강이 좋지 못한 아버지를 모시는 아들은 당장 머물 곳이 없어지자 자가용에 아버지를 모시면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 차 안에서 라면과 통조림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종종 일용직으로 돈을 벌면 목욕탕을 전전했다. 이들의 어려움을 들은 홍 회장은 적십자를 통해 부자가 지낼 수 있는 집의 임대보증금을 지원했고, 일자리까지 연결했다. 

이후 2019년 당진시자원봉사센터 봉사왕으로 선정됐으며 2020년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키도 했다. 이듬해는 충남 모범도민 표창 등 굵직한 수상의 영광도 얻었다. 

“봉사를 하면 욕심이 사라져요. 봉사는 누군가를 돕는 일이잖아요. 그러면 위보다는 아래를 보게 돼요. 욕심은 한도 끝도 없이 부족하지만, 봉사는 보람으로 채워져요. 저는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욕심이 없으니 몸도 마음도 편해요.”

  강종순 봉사자 이야기

강종순 씨는 자신을 ‘시절’이라고 말한다. 시절은 충청도 말로 바보를 뜻한다. 자서전에 담은 시 ‘시절(바보)과 시절(時節) 사이’에는 ‘있는 거 퍼주며 즐겁고 / 힘들게 음식해서 잘 먹어주면 고맙고 / 여름 내 농사지어 김치 담고 / 고구마 심어 봉사할 밑천도 만들고 / 도움이 필요한 곳 어디라도 / 걷고 뛰고 날아다녔다. / 나의 삶은 그랬다 / 봉사자로서 시절을 살았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렇게 수 십년을 묵묵히 봉사해왔다.

그가 봉사를 시작한 것은 정미면 사관리 새마을부녀회장을 맡으면서다. 마을주민 초상집에서 일손을 도운 것부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당황한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장례 물품을 마련해 동네에 초상이 있으면 물품을 이고 가서 함께 상을 치루기도 했다. 부녀회장 말고도 적십자와 생활개선회 등 여러 단체에서 회장을 맡아 35년 동안 봉사를 이어왔다. 

많은 봉사를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하는 건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일이다. 밑반찬을 만들어 봉사한 지 10년째 되던 어느 여름에, 반찬을 건네기 위해 한 할머니 집을 찾았다. 그때 할머니는 반찬을 받으면서 ‘열무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간절한 할머니 표정이 잊히지 않아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은 곧 밭을 일궜다. 열무를 심고 열무김치를 담가 할머니에 가져다드렸다. 그는 “열무김치를 드시면서 행복해하던 할머니 모습이 생생하다”며 “할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나도 덩달아 기쁘고 뿌듯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 순간이 그의 삶에 깊게 새겨졌다.

강 씨는 봉사한 삶의 절반을 남편(최기열)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는 “봉사인생 35년 뒤에는 언제나 남편이 있었고, 남편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봉사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이렇게 잘 살았을까 싶어요. 돈을 열심히 벌었어도 죽을 땐 다 쓰지도 못하고, 가져가지도 못하잖아요. 저는 마음이 부자예요. 그리고 봉사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평화로워요. 가만히 있어도 흘러넘치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봉사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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