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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3.12.26 14:28
  • 호수 1485

[기고] 살 파누코 미국 출신 영어 원어민강사
네 등을 좀 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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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쯤처럼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다. 생일을 맞아 서울에서 친구들과 브런치를 즐긴 뒤, 홀로 대전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생기로 가득 찬 레스토랑에서 하늘을 날 듯 행복했던 나는 어느새 다시 땅으로 내려왔고, 고요한 빈 방으로 향하는 여정은 내내 쓸쓸함으로 가득 찼다. 대전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걸음을 재촉해 대전천 위 작은 다리를 건너 은행동으로 향했다. 아늑한 스타벅스에서 캐러멜 마키아토를 마시며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은행동 길목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문득 가까운 대중목욕탕을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곧바로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때론 이러한 변덕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하지 않는가!)

나는 이전에 이미 대중목욕탕에서 낯선 사람들 앞에 벌거벗는 어색함과 문화적 충격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 경험은 스포츠 경기 후 팀 라커룸이나 피트니스 센터에서 개인 샤워실을 사용한 후 수건을 허리에 감은 채 걸어 다니는 미국에서의 단체 샤워 경험과는 전혀 달랐다. 여기서는 샤워를 한 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거대한 탕에 함께 몸을 담근다. 어떤 것은 자쿠지(jacuzzi)처럼 뜨겁고, 또 어떤 것은 얼음 냉탕이며, 습식, 건식 사우나도 있다. 모두 친구, 가족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들과 공유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나 홀로 대중목욕탕에서의 경험은 이전에 한국 친구들과 함께 갔을 때와는 또 달랐다. 

그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저녁 6시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프런트 직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이편이 나의 어색함을 덜어내는 데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사물함에 옷을 넣은 후에 샤워 구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역시 나밖에 없었다. 넓은 목욕탕이 나 혼자만의 공간인 것처럼 느껴져 어쩐지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탕에 들어가기에 앞서 양치와 면도, 샤워를 모두 마친 뒤, 잠시 낮은 샤워 의자에 쪼그려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순간 내 등을 위아래로 격렬하게 문지르는 때밀이 수건의 거친 감촉이 느껴졌다. “어떻게……?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거기에는 어둡게 그을린 피부의 70대 노인이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분은 계속해서 모든 묵은 때가 벗겨질 정도로 시원하게 내 등을 밀어주었고, 나 역시도 보답으로 그의 등을 밀어주었다. 이 모든 일은 너무나도 빠르게 일어났고, 우리는 별다른 말도 나누지 않았다. 서로를 소개하거나 서로에 대해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고, 우리가 나눈 건 그저 미소를 띤 “감사합니다” 정도였던 것 같다. 그는 그때도 나에게 낯선 사람이었고, 그 뒤로 그분을 다시 뵌 적이 없으니 여전히 낯선 사람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나에게 다가온 그 말 없는 노인의 따뜻한 행동은 다른 어떤 것보다 기억 속 깊이 남아있다. 

미국에는 ‘네가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줄게(If you scratch my back, I'll scratch yours)’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그분은 지혜로 이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오직 한국에서 이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내 등을 밀어주면, 나도 네 등을 밀어줄게(If you scrub my back, I’ll scrub yours).”

* 이는 상부상조(相扶相助)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이다. (번역 도움 : 김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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