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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 입력 2024.01.19 18:40
  • 수정 2024.01.19 20:58
  • 호수 1489

[당진문화재단 당진 문화예술인 기록사업 3] 나동수 시인
젊은 날을 지탱해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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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당진문화재단에서 예술인 영상기록 사업으로 지난해 △양기철 △김윤숙 △나동수 예술인의 삶을 영상으로 담았다. 평생을 예술에 헌신하며 삶을 바쳐온 이들의 이야기는 당진문화재단 유튜브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당진시대에서도 이들의 삶을 기록해본다.

나동수 시인의 녹록하지 않은 젊은 날을 지탱하게 해준 것은 시였다. 긴 인생길을 돌고 돌아 이윽고 시로 들어선 삶은 맑고 푸른 그의 언어를 닮았다. 나동수 시인은 삶을 관조하는 통찰,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언어로 시를 빚어낸다. 

가난한 형편의 맏이로 태어나

나동수 시인은 1952년, 합덕에서 3남2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가정 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다. 중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도시락을 싸간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도시락 대신 배를 채우기 위해 고구마 몇 개 들 고가는 날조차도 며칠 없었단다. 그는 동생들이라도 굶지 않게 자신의 학업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나 시인은 “내 학업을 포기해야만 동생들이 잘 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동생들이 다 공부를 잘했는데, 집에서 모두 뒷받침해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 시인은 낮에 농사일을 돕고 새벽에는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그의 나이 서른 살 몇 해를 앞두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라 아버지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도 없었다기에 동생과 함께 초상화를 그려 영정 사진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그는 “동생은 어렸고, 가족을 부양할 가족이 나밖에 없었다”며 “그래도 그때는 크게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고 전했다.

어려울 때는 몰랐지만 세월이 흘러 보니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난 집안이었다. 두 동생은 미술을 전공해 화가와 교사로 살고 있다. 나동수 시인도 그림에 문외한은 아니었다. 2008년 서예대전과 대한민국고불서예대전에서 문인화를 그려 입회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생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 그의 묵은 꿈이다. 그는 “동생들과 함께 형제전 전시를 당진에서 열고싶다”며 “동양화, 서양화, 시화까지 더해 멋있는 시화전을 여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전했다.

시사문단 신인상으로 등단

 “텅 빈 들녘 / 계절풍 바삐 지나는 차가운 길목에서 / 은빛 백발을 날리는 갈대 / 짧은 삶으로 고운 넋을 여의고 / 구름도 한가로운 오후 내내 빈 냇가에 서서 / 갈색 풍경을 만들더니 / 종일 세월을 몰아가던 허기진 바람을 / 하나 가득 보듬고 있었네 / 참새떼 제 둥지인양 숨어드는 저녁엔 / 초저녁 하늘에 손톱달이 걸리면 / 갈대는 시린 몸을 뒤척이며 / 서걱서걱 서걱서걱 달빛을 먹는다” - 나동수 시인의 시 <갈대> 

허기진 바람을 품은 갈대처럼 나동수 시인도 시에 대한 갈망과 의지를 품고 살았다. 30여 년 성실하게 공직생활을 이어온 그는 2010년 시사문단 신인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시 <갈대>는 시인 나동수로서 첫 발을 딛게 한 작품이다. 이후 <미친 6월의 하루> 등을 포함해 첫 시작 ‘백령도 친구’를 2011년에 발행한다. 그때가 그가 퇴직하기 1년 전이었다. 그는 빈여백 동인문학상, 북한강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인생 전환점을 맞기 시작한다.

“등잔 생각은 못하고 글을 공모전에 냈어요. 신인상을 받고 보니 글 쓰는 기질이 있나 싶어 저를 되돌아 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글에 대한 애착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전적으로 글에 매달려 글쓰기를 했죠. 지금은 글이 익숙하면서도 아직도 낯설어요.”

문학을 알리는 일에도 적극

시를 쓰는 것과 함께 문학의 깊이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도 노력해 왔다. 나 시인은 1990년대부터 새마을문고 독서동아리 활동을 해 왔다.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함께 문학인으로서의 꿈을 펼쳐왔다. 새마을문고는 어린이나 어르신들이 모여 자신들의 글을 쓰고 발표하는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글을 발표하며 서로 생각을 나눴다. 그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며 “억지가 아닌 순수하게 우러 나오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나 시인은 2019년부터 새마을문고 당진시지부 회장을 맡아 오고 있다. 또 독서문화운동전문가 양성 과정의 일환으로 동화구연을 배우고 봉사도 하고 있다. 장애인 시설을 찾아 동화를 읽고 그들의 이름으로 시를 지어주기도 한다. 

2015년부터는 4년 동안 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문화 기반이 취약한 지역 문인에게 창작 의욕을 북돋고 출판 지원으로 창작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올해의 문학인 사업을 추진해 왔다. 또한 14회를 맞은 청소년문학상도 당진문협이 추진하는 주요 사업 중 하나다. 청소년문학상은 회원들이 십시일반 상금을 모아서 지급하기도 할 정도로 운영이 어려우면서도 그만큼 회원들이 열의를 가지고 운영됐던 사업이었다. 중단 위기도 처했지만 미래 세대 문학인 양성을 중단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회원들이 허리띠를 바짝 당기며 살려 오기도 했단다. 그는 “지방의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의미에서 청소년문학상이 좋았다”며 “이 사업이 지속돼 앞으로 문인협회 발전이 거듭되고, 또 당진에서 남들이 우러러 볼 작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삶을 너그럽게 만들어 준 ‘시’”

나 시인은 2020년에 당진 올해의 문학인으로 선정됐다. 그리고 2011년 백령도 친구, 2019년 종이 가방에 이어 세 번째 개인 시집은 <그림자>를 출간했다. 그중 시 <저녁>은 삶의 의미를 기록한 수작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나 시인은 “낮에는 바삐 움직였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휴식을 취한다”며 “어둠이 내려야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쓴 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해 1월 다섯 번째 시집 시 활동과 마찬가지로 서한시문학회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서한시문학회는 1993년에 창립된 서해안 지역의 대표 문인들의 모임이다. 나 시인은 13대 회장으로 현재 서한시 문학회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1월, 그의 다섯 번째 시집 <풍경소리>가 세상에 나왔다. 나 시인은 생에 끝자락에서 황혼이 되어도 나를 완성할 수 있다면, 물이 되고 바람이 되도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발이 닳도록 나서고 싶다고 노래한다. 지난 그의 삶은 성실하고 정직했다. 그 속에서 투명한 언어를 길어 올렸고 흰 종이 위에 긍정의 무늬로 새겨왔다. 

“저에게 시는 꽃밭에 꽃과 같은 역할을 해준 매개체에요. 그래야 삶이 너그러워지고 여유가 생겨요. 시는 저에게는 아름다운 동행이죠. 앞으로도 시를 놓지 않고 같이 갈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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