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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석문편
석문방조제의 건설과 석문지역의 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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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제작된 석문의 옛 지도와 현재 지형 (※자료출처 : 국토지리정보원) 
1963년 제작된 석문의 옛 지도와 현재 지형 (※자료출처 : 국토지리정보원) 

“석문방조제는 석문지구 간척농지 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방조제와 배수갑문은 1987년 7월 시작하여 1995년에 준공됐고 2005년에 전체가 완공되었다. 석문방조제가 축조되면서 거대한 담수호인 석문호가 송산면과 석문면 사이에 생겼다. 또한 농경지와 국가공단 부지가 확보되었다. 석문방조제 건설로 인하여 송산면의 어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당산리, 삼월리, 무수리, 가곡리까지 해안가를 따라 걸쳐 있던 염전이 모두 폐업했다. 당진군의 지도를 바꿀 정도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송산면과 석문면 사이의 해안선이 24km나 줄어들었다. 석문방조제 길이는 6606m, 배수 갑문의 폭은 15m, 높이는 10.5m로 방조제 위로 왕복 2차선 도로가 있다. 석문호(담수호)의 수혜 면적은 1546ha, 유역면적 2만5217ha, 만수면적 763ha, 총저수량 1461만㎥, 유효저수량 910만㎥이다.” (출처: <당진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당진시)

석문방조제의 건설은 석문면 소재 어업구획 감소, 김(해태) 양식의 소멸, 삼화리와 통정리, 장고항리에서 성행했던 맨손어업의 소멸 등을 불러왔다. 당진의 대표적인 내포(內浦)였던 보덕포는 바닷길의 차단으로 포구의 기능을 상실했다. 

석문방조제 건설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포구가 쇠퇴한 반면 장고항리의 마섬포구는 점차 활성화되었다. 마섬포구는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어선의 출입이 거의 없던 곳이었다. 헌데 석문방조제가 완공되면서 방조제의 종점에 위치한 마섬포구로 관광객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석문산업단지 해맞이공원이 조성되고 성구미 포장마차촌이 마섬포구로 집단 이주하면서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마섬포구가 북적이게 되었다.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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