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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지면 도이리 도호의숙, 이름 적힌 팻말만 덩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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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배출해낸 사립 교육기관
현재 건물 사라지고 우물 복원돼
역할과 의미 설명하는 안내판 설치 요청

대호지면 도이1리에 자리한 도호의숙 우물터
대호지면 도이1리에 자리한 도호의숙 우물터

 

‘도호의숙’은 대호지면의 사립 교육기관으로, 대일 항쟁기 시절 도호의숙 출신들은 당진지역 최대 독립운동인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현재 도호의숙 건물은 사라지고 없고 도호의숙 앞에 있던 옛 우물만 복원돼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름 적힌 팻말만 있을 뿐, 도호의숙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이 없다면서 안내판 설치를 요청하고 있다.

‘도호의숙’은 대호지면 도이리에 있던 사립 교육기관이다. 도이리 강당골에 있던 도호의숙은 초반에는 남이흥 장군의 후손인 의령 남씨 중종에서 그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종숙(宗塾, 가문의 학당)으로 시작됐다. 이후 문호를 개방해 다른 사람들도 함께 교육할 수 있도록 ‘도호의숙’으로 개편됐다. 유학자들을 초빙해 한학을 비롯한 민족교육을 실시했다.

종숙 출신으로 무과 등과자는 남이흥의 후손 20명이 배출됐으며, 도호의숙 출신들은 대일 항쟁기 시기 대호지·천의장터 4.4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뒤이어 도호 학당으로 학맥을 이어오다 일제의 강압으로 폐쇄된 후 도이리 강습소로 이어 오다가 1930년에는 이마저도 폐쇄됐다.

현재 도호의숙 건물은 사라지고 없고 민가가 들어서 있다. 대신에 도호의숙 앞에 있던 옛 우물을 복원해 도호의숙터로 보존하고 있다. 그런데 주민들은 우물 앞에는 ‘도호의숙 우물터’라는 표지판만이 있고, 도호의숙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남대우 대호지면 도이1리 이장은 “실제 도호의숙이 있던 자리에는 이름만 적힌 팻말이 있을 뿐 도호의숙이나 우물터가 언제부터 생겼고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이었는지 설명이 없어 아쉽다”면서 “도호의숙 관련 비석이 도이1리 마을회관에 있긴 하지만 실제 도호의숙이 있던 자리에도 도호의숙을 설명해주는 안내판이 설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도호의숙은 지역의 역사 문화 유산인 만큼 언제, 어떻게 시작해서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무슨 영향을 미쳤는지, 최근에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복원했는지 등 안내문이 설치되기를 바란다”면서 “역사에 관심있는 학자나 학생들이 이곳에 들려 보고 가기도 해서, 주변이 잘 정비되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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