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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석문편
석문 어민들의 생활문화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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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당진 석문면과 서산 대산읍을 연결하는 대호방조제 물막이 공사 장면(※출처: 당진시)
1983년 당진 석문면과 서산 대산읍을 연결하는 대호방조제 물막이 공사 장면(※출처: 당진시)

석문면은 1950년대와 현재의 지형을 비교할 때 방조제 건설과 간척사업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지역이다. 대호방조제 건설로 섬이었던 도비도는 육지가 되었으며, 주민들이 낙지를 잡고 김 양식을 했던 갯벌은 논이 되었다. 석문방조제 건설로 바닷물길이 끊긴 보덕포에는 옛 포구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특히 도비도와 교로2리, 삼화리에서는 방조제 건설 이전엔 맨손어업이 발달하여 어항시설이 있던 포구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정치망을 비롯한 전통어업이 활발히 이뤄졌다. 이곳의 간석지에는 해안가 마을 주민은 물론이고 농촌 지역의 인근 마을에서도 물때에 맞춰 조개 등을 채취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석문의 포구 역시 주된 기능에 따라 크게 해상교통로로서의 포구와 수산업 중심의 포구로 나눌 수 있다. 수산업 중심의 포구는 다시 어선어업을 중심으로 한 포구와 선박의 출입은 드물었으나 맨손어업 등이 발달한 간석지로 분류된다. 

육상교통이 발달하기 이전, 당진은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곳곳의 포구에 인천행 여객선이 기착했다. 경인 지역에 당진의 출향인이 유독 많은 것도 해상교통이 발달한 것과 관계가 있다. 삽교호방조제 건설과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 등으로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해상교통은 점차 쇠퇴하여 난지도의 인천행 여객선을 마지막으로 2011년 이후 당진-인천 간 해상교통은 모두 중단되었다. 

여객선이 기착했던 포구로는 보덕포항과 장고항항, 난지도항이 있다. 보덕포항은 1930년대에 조선운수회사가 보덕포-인천간 여객선 운항항로를 개설하여 50톤급 이상의 기계배가 운항했으며 1935년경에는 장고항에도 여객선 운항로가 개설되었으나 현재는 모두 폐쇄되었다. 

우현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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