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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4.02.08 18:58
  • 호수 1492

잘못 떨어진 오줌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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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미 수필가, 시인

 

주인공 귀싸대기 몇 대쯤 갈기는 장면이 들었어야 했는데. 기대했던 나를 비웃듯 그의 오줌 줄기는 정확히 흐르는 역사에 떨어져 감쪽같이 합류해 버렸다.

‘서울의 봄’을 보고 자리를 털고 일어설 수 없었다. 하룻밤에 국가 권력을 찬탈한 도적놈을 인정하는 기분이랄까. 영화든, 현실이든 선은 권하고 악은 징벌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 사는 세상, 밝은 미래 국가가 열린다. 그런 당연함으로 아이를 낳고 양육하고, 제자를 지도하고, 정치인을 뽑아서 일하도록 하는 것 아닌가.

그가 설쳤던 그 시간. 나는 어디서 무엇을 했던가. 국가의 현실과 미래보다는 나 개인의 꿈에 푯대를 고정했던 여고 1학년이었다. 열두 서너 살에 초등학교도 못 마치고 부잣집 아기를 돌보러 간 친구, 중학교만 겨우 마치고 공장에 들어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친구. 그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학교 밖의 일에는 일절 관심을 끊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그해 4월. 정문 앞 식당에서만 파는 칼국수를 먹으러 친구들과 함께 언덕길을 넘는데 정문이 시끌시끌하다.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와 해산하지 않으면 최루탄을 발사하겠다는 스피커 소리가 서로 엉키고 설켜도 진달래와 목련은 자지러졌다. 그 당시는 무슨 다툼인지 몰라 두근거리는 가슴만 다독이며 식당으로 향하던 중 함께 걷던 친구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이렇다 저렇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정문 근처에서 사라진 후 며칠이 지나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핸드폰이 없던 때라 답답해 죽던가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궁금한 시간이 지나고 중간고사를 보는 첫날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돌아왔다.

조용하던 정문은 중간고사 마치기 하루 전날부터 또 시끄러웠다. 전두환이 무력으로 정권을 잡아서 반대하는 광주 양민에게 총을 쏘고 임산부 배를 갈랐다나.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보였는지 순진한 고갯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일사천리로 증거 사진을 보여준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뿐더러 구토 나고 머리가 아파서 마지막 날 중간고사는 망쳤다.

처음 사귄 친구들이 사라졌다 나타난 날을 전후로 그들과 나의 관계는 더욱더 끈끈해졌다.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자며 도원결의 비슷한 행위도 했다. 또 며칠이 지나고 친구 한 명이 어려운 부탁 좀 하자고 한다. 12. 12 사건과 광주민주항쟁 사진을 등사판으로 긁은 복사물을 보여주며 솔직한 나의 의견을 써달라고 한다. 되도록 실제 느낌보다 좀 더 강렬한 표현을 쓰면 좋겠단다. 친구의 첫 부탁이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날을 꼴딱 샜다. 완성하지 못한 글을 들고 도서관에 가 또 씨름하다 수업에 들어갔다. 다시 도서관에 돌아왔을 땐 책과 노트는 있는데 쓰다만 원고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부탁한 친구와 함께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포기하고 하숙집에 갔다.

문제는 다음 날 발생했다. 전날 설친 잠까지 합해서 죽은 사람처럼 자고 일어나 등교했더니 내가 쓰다만 원고와 비슷한 내용의 글이 대자보에 게시되었다. 물론 구토 나는 사진 복사물과 함께다. 교수님은 노발대발 누가 붙였는지 자수하면 봐준다고 으름장 놓지만 내가 나설 일은 아니었다. 첫째는 대자보를 붙인 사람을 찾는다는데 나는 붙이지 않았다. 둘째는 내가 쓴 문구가 반이라면 절반은 아니다. 셋째는 난 복사물을 보고 쓴 감상문이지 벽에 붙여 선동하는 대자보를 쓴 적 없다. 넷째는 누가 훔쳐서 고쳤는지 나도 모른다.

대자보 사건 발생 후 내가 졸업할 때까지 그 친구들 소식은 영영 듣지 못했다. 대신 외로운 내 곁에 잘 생기고 똑똑한 복학생 아저씨가 갑자기 나타났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예의 바른 아저씨.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거나 토론하면 나보다 폭넓어 배울 점이 많은 어른이었다. 아저씨는 그동안 무관심했던 우리 과 다른 친구들을 내 곁에 묶어주며 동생처럼 챙겼다. 짬짬이 부탁도 했다. 4년 후 훌륭한 교사가 되려면 대자보나 붙이는 친구는 멀리하라고 했다. 그렇게 약 3주가 지난 후 아저씨도 친구들처럼 강의실이나 식당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다.

아저씨가 소개해 준 친구들은 나와 비슷하게 시골에서 올라온 악바리들이다. 얼굴도 새까맣고,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우골탑(소를 팔아서 학교생활하는 대학생)들이다. 그래 죽기 살기로 공부만 한다. 우리 무리 중 용우라는 친구도 있었다. 전두환은 물러나라고 소리 지르다 복학생 아저씨가 설득하여 우리 무리에 뒤늦게 합류한 친구다, 다른 악바리 친구들과 달리 용우는 두 시간 공부하면 세 시간 도서관 잔디밭에 앉아 신나는 율동과 함께 ‘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어주자고 노래 부르던 친구다. 성적표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 잠들어도 깨워주지 않고 살짝 귀가하는 다른 친구들과 달랐다. 좀 오래 친구하고 싶었는데 입대해 버렸다. 웃긴 것은 강원도나 부산에서 군 생활할 줄 알고 성대하게 송별회를 해주었는데 우리 학교 정문에서 데모를 진압하는 전경이 되었다. 나는 데모 대열에 끼지 않아서 말로만 들은 내용인데 용우가 진압하러 오는 날은 데모를 풀고 자진 해산했다고 한다.

문득 걱정이 생겼다. 역사를 잊은 철부지가 나타나 전두광이를 ‘택시 운전사’와 ‘서울의 봄’을 흥행시킨 영화계의 히어로라 우기면 어쩐다지? 다음 영화에서는 역사에 오줌이나 깔기며 껄껄 웃는 주인공이 아닌 적어도 이태신, 김오랑의 후손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는 사람으로 그렸으면 속이 좀 풀리겠다.

영화는 끝났어도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어 기도했다. 정상호, 이태신, 장원경, 김오랑 등 민주주의를 지키려 몸 받친 영혼과 그 자손들도 행복하기를.

함께 간 지인이 손잡아 끌어주어 영화관을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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