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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4.02.16 19:29
  • 호수 1493

[칼럼] 성장하는 힘에 대하여 (김선순 봄봄문학상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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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순 봄봄문학상담연구소 소장

 

어릴 적 성장이란 육체적 성장이 훨씬 의미로웠다. 키가 얼마큼 컸는지, 몸무게가 얼마나 늘었는지, 힘이 얼마나 세졌는지 눈에 보이는 성장이 중요했다. 설날이면 떡국을 두세 그릇 한꺼번에 먹으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마음은 이런 성장을 더 의미있게 부추겼던 것 같다.

사춘기를 겪으며 성장은 육체적 성장과 함께 정신적인 성장도 중요해졌다. 눈에 띨 만큼 어른으로 성장하는 육체를 마음대로 조절하고 제어할 수 없는 마음들이 튕겨져 나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가도 작은 일에도 감정이 요동을 치고 범람했다. 사회인으로 부모로 책임으로 살아가게 되었을 때 성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을 수행해야 했고, 주어진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데 바빴다. 멈춰진 육체적 성장과 함께 정신적 성장은 안드로메다 밖으로 멀어진 채 살아야했다.

마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을 다한 사람처럼 온전한 사람인 척 했다. 어느새 성장의 변화를 만들어가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내려고 했다. 내가 가진 생각과 의견에 강력한 동의를 구하고 조언하려고 했다. 변화와 성장을 뒷전으로 밀어놓고 성장을 이룩한 사람인 듯 살았다. 앞으로만 달려 살아온 삶, 젊음을 청춘을 하얗게 불태웠다. 가득찬 기름이 점점 떨어져가는 자동차처럼 성장에 대한 욕구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만 향하던 육체의 방향을 바꾸고 잠시 멈춤, 지나온 삶의 길을 되돌아봤다. 달려온 삶의 길이 끝도 없이 펼쳐있었고, 마다마다 길 위에서 치열했던 나를 봤다. 열심히 내달리는 내 모습이 보였다.

어릴 적 간절하게 바랐던 육체는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어색하게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냈다. 희끗희끗 보이는 흰머리, 하나씩 늘어가는 검은 점들, 팽팽했던 얼굴 사이사이 굴곡이 지기 시작했다. 육체가 만드는 변화는 곧장 정신적인 내면을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중요하다고 믿고 왔던 많은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가 누구인지 의문이 밀려들었고,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육체가 굽어진 성장의 변화를 만드는 동안 돌보지 않은 정신적인 내면이 바싹 말라있었다. 

성장, 성장하는 것에 대해 갈급해졌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뇌였다. 성장하는 것으로 느껴지던 변화의 힘이 간절해졌다. 바깥으로 향해진 삶의 시선을 정신적 내면으로 돌렸다. 육체의 변화가 지속되는 동안 알아차리지 못하고 돌보지 않은 정신적 성장이 목말랐다. 그렇게 석사, 박사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내면으로 성장하기 위한 나를 위한 돌봄이었다. 석사의 과정으로 뚫었던 일상의 숨구멍, 그 속에서 다시 새롭게 숨 쉴 수 있었다. 삐걱거리고 막히고 비틀거리는 몸과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 멈춰진 성장의 힘을 북돋아 다시 한걸음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 

석사의 숨구멍은 박사 과정을 걸어가는 동력이 되었다. ‘뭘 하겠다. 이루겠다’는 목표는 중요하지 않았다. 박사 과정을 걷는 것만으로도 성장의 변화를 만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장의 이름으로 일상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성장은 껍질을 깨는 일이었다. 겹겹이 뒤덮고 있는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낼 수 있게 하였다. 껍질 속에 숨어있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도 알아차리지 못한 나, 나도 놀랄 만큼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됐다.  오늘도 나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성장은 살아있는 삶과 함께 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생 동안 이뤄가는 것이다. 육체적 성장이 젊음의 최고점을 지나 늙음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동안 정신적 성장은 끝없는 껍질 깨기와 함께 쉼 없이 나아가고 있다. 육체의 늙음으로 얻게 되는 정신의 성장은 상상 이상으로 나를 나이게 만든다. 본연의 나에게 가까워지게 한다. 성장은 평생 동안 나와 함께 살아있음의 강력한 에너지로 나를 사랑하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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