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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24.02.29 19:20
  • 호수 1495

[문화 칼럼] 남기은 당진문화원 당나루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역사 깊은 면천향교와 골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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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지역 면천(沔川) 지명을 살펴보면 물 흐를 면(沔), 내 천(川)으로, 물이 많고 맑고 역사가 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당진에서 제일 높은 아미산 줄기 끝자락에 몽산이 있다. 몽산성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하다. 몽산 아래 동네가 역사 깊은 면천 관아가 있었던 곳이며, 1100년이 된 은행나무는 효성이 깊은 복지겸 장군 딸의 두견주 설화를 안고 면천을 지켜오고 있다. 

이중에서 기술하고자 하는 것은 고려말기에 축조되어 옛 모습 원형대로 복원되고 충청남도 기념물 제141호로 지정된 면천향교다. 

면천향교의 위치는 고대(古代) 면주읍(沔州邑) 동문외거(東門外距) 5리 현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513번지에 있다. 향교 건립 연대는 여러 문헌에 의하면 고려 제31대 공민왕 14년 1366년 병오 5월에 건립해 고려말과 조선조 및 경술국치 을유광복을 거쳐 현금(現今)에 이르고 있다. 본 향교의 건축물 구조 형태는 고려시대 건물형으로 맞배 지붕과 원통 기둥 및 대성전의 신문이 독문이고 좌우로 창문을 낸 것은 고려건축 양식이다. 

본 향교는 옛날 중등 관학 교육기관이었다. 양반 자제들의 교육과 선성 공자와 중국 사성 및 선철, 선현을 음 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을 제향하며 매월(음) 초하루 보름에 봉심을 한다. 서민의 향속 선도 교육의 중추적 역할을 다했으나 경술국치 이후로는 서구문화 물결에 의하여 교육 기능이 상실됐다. 현재는 제사기능만 남아있다. 

본 향교를 고려조에서 일찍이 건립해 관학 교육을 장려하게 된 것은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의 후손 원주방호별감 면천인 복 규 가 고려 25대 충렬왕 17년(1291)에 합단의 난적을 원주 치악성 전투에서 격퇴시킨 공로로 이곳 면천감무를 동왕 19년(1293)에 면주 승격시킨 후 27대 충숙왕 재위의 향교 부흥정책으로 관학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공민왕의 명으로 면주(沔州: 현 도청을 말함)에 향교를 건립했다.

본 향교는 전술한 바와 같이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고려건축 양식의 옛 모습 그대로 634년 동안(2000년 기준으로 계산) 고고하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에 충청남도에서 1975년 2월 5일 충남 문화재 제214호 및 충남건조물 제102호로 지정했다가 2021년 11월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지정번호가 폐지돼 충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됐다. 면천향교 건물의 구조를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①대성전 : 문성왕 공자님 주벽으로 좌우 4성 위가 모셔진 곳 ②동무 : 공문십철, 송조육현, 아국십팔현 신위가 모셔진 곳 ③서무 : 공문십철, 송조육현, 아국십팔현 신위가 모셔진 곳(서무 바로 뒤에 제기고 건물 : 제사 지내는 제기를 보관해 놓은 곳) ④내삼문 : 삼문 중 중앙은 신도문, 우측 문은 유생 출입문, 좌측 퇴출문 ⑤명륜당 : 유생들이 수학한 수업하던 곳 ⑥동재, ⑦서재 : 위패봉안 및 서고 유형으로 사용하던 곳 ⑧외삼문 : 삼문 중 중앙은 신도문, 우측 문은 유생 출입문, 좌측 퇴출 문 ⑨ 학고재 : 처음 배우는 유생들이 수학하던 곳 ⑩홍살문 : 악귀를 물리치는 붉은 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왕 능 같은 묘지와 충신 정려각, 향교, 서원, 궁궐 및 관아 등의 정문으로 설치 ⑪하마비 : 신성한 이곳은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말에서 내려 도보해야 한다는 뜻

오랜 역사와 깊은 동양철학이 내재돼 있는 원조 중국의 유학 문화는 공자의 교의 사상, 도덕적 정치사상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정치사상은 정치 도덕적 귀감이 되었을 뿐 정치 실무의 현실화를 거두지는 못했다.

서구문화의 영향과 중국 모택동 주석의 소련 공산주의 문화혁명 정책에 의하여 유림과 공자의 교학과 정치사상이 현실정치 지속성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한국은 조선 500년 유교 정책이 서구문화의 물결에 퇴색됐고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부흥 정책 일환으로 한글전용이 실행되며 한문의 가치가 미미해져 가고 있다. 그러나 한문의 중요성은 역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모든 분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학문 한문은 그 범위가 넓어 한자 글씨만 해서, 행서, 초서, 예서가 있는가 하면 공자 같은 성인도 가죽끈으로 만든 책장 넘기는 것을 3번 끊어지도록 읽었다는 위편삼절, 역경이란 한 권의 책 의미를 상기하면 얼마만큼 넓고 깊은 의미가 있는지 이해할만하다.  

온 국민이 한글, 한문 혼용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학계, 교육계에서 염원하고 있다. 특히 우리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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