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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늙어 배운 컴퓨터에 푹 빠졌습니다” 이병순씨(정미면 봉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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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앞두고 인터넷 배우는 검은 두루마기 할아버지

약속시간을 한참 지나 도착한 당진군청 정보화전산실에는 컴퓨터 수업이 한창이었다. 아이들로 북적댈 줄 알았더니 아줌마, 아저씨들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어색한 손놀림으로 마우스를 만지고 있다.
“내가 이병순이여”하며 검은 두루마기 입은 할아버지가 먼저 인사를 하신다.
할아버지가 쓰시던 모니터를 보니 한문이 빼곡하다. 돋보기를 쓰고 한 자 한 자 입력하고 있는 모양이다. 언뜻 보기에도 연세가 많을 것 같은데 나이 밝히기를 한사코 꺼리신다.
“쑥스럽게… 늙은이 나이는 뭘 물어봐…”
올 봄부터 배우기 시작한 컴퓨터는 이제 이병순(79세. 정미면 봉생리) 할아버지에게 소중한 친구가 됐다. 한글97을 배우면서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필요한 자료를 꼼꼼이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문이 가득한 모니터는 한국 새마을운동과 4-H운동 40년사 중 필요한 부분을 요약·발췌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땅도 좁고 자원도 얼마 없어.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가 먼저 정보를 차지하느냐가 중요하잖아. 나같은 사람이야 나이 먹을 만큼 먹어서 어렵지만 젊은 사람들은 뭐든 빠르잖아. 샥시(색시)도 많이 배워.”
눈도 침침하고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힘드실 텐데 1년여 동안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이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글97 뿐 아니라 인터넷까지 섭렵(?)한 이 할아버지는 인터넷이 그렇게 신기하기만 하다.
“아, 어찌나 신기한 지 물러. 여기저기 누르기만 하면 눈 깜짝할 시간에 바뀌니께 정신이 없어. 또 신기하기도 허고…”
조금 맛만 봤다는 이 할아버지는 농촌에 유용한 정보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한다.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그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인터넷 안에 들어가면 필요한 정보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나는 우리 아들들 모두 농사지으라고 공부 안 가르쳤어. 그런데 막상 내가 늙고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그놈의 농사 지어봤자 남는 건 뭐여. 빚이잖아. 빚… 자식들한테 미안할 따름여.”
이제는 다 장성한 자식들한테 미안하기만 한 할아버지는 건강하게 살다가 가는 것이 자식들한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거란다. 그래서 아침부터 나와서 뭐든지 배우고 할 수 있는 일은 몸 건강한 지금 해두려는 것이다.
“나도 얼른 저 기계(컴퓨터)사서 우리 손주놈들하고 재밌게 놀아야지.”
한복이 좋아 항상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고 다닌다는 이 할아버지는 새로운 것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멋쟁이 할아버지셨다.

서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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