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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1996.04.01 00:00

“당진군민의 젖줄 삽교천 역사 첫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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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천의 역사문화'집필 김추윤 교수

“삽교천은 내포지방 역사의 발원지이자 당진군민의 젖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하천에 비해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향토사가들에 의해 연구되었던 적도 없었죠”
당진문화원이 펴낸 당나루 맥락 제15집 '삽교천의 역사문화'를 단독 집필한 신흥전문대 김추윤(47세, 이학박사) 교수는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삽교천의 역사를 밝혀 당진향토문화의 균형적인 발전을 시도해 보고자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평 금천리 출신으로 한때 호서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김교수는 20대 초반부터 군지편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당진의 향토사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으며 다수의 관련 논문을 발표하는등 왕성한 연구활동을 벌여왔다.
김교수는 이 책에서 삽교천에 대해 처음 밝혀진 사실들로 ▲삽교천의 어원 ▲삽교천변의 포구와 월경지에 관한 연구 및 ▲고지도상의 삽교천 위치등을 꼽았으며 스스로도 ‘주목할만한 성과’라고 자부했다.
이를테면 삽교천은 사읍교천, 신교천, 범근내, 금마천 등으로 불리었으며 '삽'은 백제어에서 붉은 색이란 뜻으로 삽교천이 홍수가 자주 일어나 붉은 탁류가 흐르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또 삽교천은 고려시대 이래로 현물조세를 운반하던 주요 교통로였으며 충청도 일대에서 제일 큰 포구인 범근내포, 공세곶이 있었고 월경지 (‘갑’이라는 지역의 소유토지가 ‘갑’지역에 연결되지 않은 채 ‘을’ ‘병’등 입지조건이 좋은 다른 지역의 구역에 존재했던 조선시대 지방행정조직의 특수형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 등이다.
“처음엔 원고지 20장밖에 쓸 수 없을 것 같았다”며 자료가 부족해 겪었던 고층을 털어놓는 김교수는, 그러나 전국 곳곳의 도서관을 찾아 자료를 뒤적이고 철저한 현장답사를 거치는 동안 1700장의 방대한 분량의 연구서를 낼 수 있었다.
김교수는 “모쪼록 이 책이 당진의 향토문화연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현재 공업, 농업용수로, 관광자원으로 유효하게 쓰여지고 있는 삽교천을 무작정 이용만 할 것이 아니라 보존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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