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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1996.05.13 00:00

[탐방] 서해안 최초 석유화학단지 '대산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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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버려진 땅! 이주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편집자주
80년대말 서해안시대의 개막은 바로 대산공단에서 시작되었다. 중부권 종합개발계획에 의해 국내 굴지의 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선 당시의 대산은 지금 유화단지가 들어서려는 석문공단과 흡사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지금 '대산'을 보면 이것이 몇년뒤 당진의 모습이라는 것을 감히 상상하기도 싫을 것이다.



1996년 5월 첫째주 금요일, 대산공단과 인접해 있는 대산읍 독곳리 독호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수업을 미처 마치지 못하고 전부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농약냄새 같기도 하고 계란 썩은 냄새 같기도 한 악취가 무려 40여시간동안 온마을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복도엘 가도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꼭 닫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같은 악취에 이미 이골이 난 주민들의 제보로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나왔지만 냄새를 카메라에 담을 순 없었다.
“4학년 된 딸아이가 집에 와서 어딜가도 냄새가 풍겨 갈곳이 없었다고 말하는데 제 무능력이 또다시 한탄스러웠습니다. 고향이 뭐라고, 몇푼 자금이 없어 이곳을 뜨지 못해 아이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가 싶어서요”
공단이 들어서기 전부터 고향인 이곳에서 살아온 이마을 이춘식(43세)씨는 남들은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때에 “능력이 없어 고향을 못 떠나고 있는게 한심스럽다”며 씁쓸해 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이 사건은 물론 공해피해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서해안시대’라는 화려한 구호와 함께 맨먼저 개발의 손길이 미친 이곳은 이미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

전형적인 반농반어촌의 마을로 특히 어장이 발달해 해태, 굴, 바지락등만 따서 팔아도 지금 돈으로 한달 3~4백만원은 족히 벌 수 있었다는 곳. 전국 최고의 뱅어포 생산지로 농토도 비옥해 풍요로웠던 곳. 그러나 풍족했던 이 어장이 매립으로 사라지고 국내 굴지의 석유화학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먼 과거사가 되어버렸다.
짭짤한 소득원이던 해태양식도 불가능해졌고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떼죽음을 당한 낙지와 망둥이가 속출했다. 검은 반점에 구멍이 뚫린 꽃게도 건져졌다. 피해는 어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민들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과 소음에 한여름에도 창문을 열어놓지 못하는 수난을 겪어야 했고 피부병과 가래, 눈병을 앓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24시간 풀가동하는 공장의 굴뚝에서 치솟는 불기둥으로 한밤중에도 대낮과 같이 밝은 '백야현상'이 계속됐으며 구부러진 고추와 웃자란 깨, 말라붙은 참외줄기등 농작물 피해도 잇따랐다.
가축도 무사하지 않았다. 양계장에서는 무정란 달걀이 나왔고 칠면조도 이미 골아버린 알을 낳아 부화가 되지 않았고 어쩌다 부화가 된 알에서는 죽은 새끼가 나왔다.
결국 91년 환경운동연합등 민간단체에서 실시한 환경영향 조사결과 이곳은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선포됐다.

완벽하다는 공해방지지설, 그러나...

주민들에겐 죽음의 땅을 남긴 주범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대산공단은 과연 어떤 곳인가.
84년 대호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중부권 종합개발계획에 의거,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대산공단은 대산읍 독곳리와 대죽리의 가로림만 일대 2백만평의 공유수면을 매립해 민간자본을 유치, 석유화학단지로 조성됐다.
89년 현대정유가 맨 처음 가동에 들어갔고 곧이어 삼성종합화학, 현대석유화학이 입주했다. 합성수지제품의 기초원료를 생산해내고 있는 이들 공장은 대중국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지속적으로 규모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가연성이 높은 생산물 성격상 철저한 공해방지시설을 갖추게 되어있는 석유화학단지. 그렇다면 대산 3사의 공해방지시설은 어떠한가?
대산 3사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공인하는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들 3사는 총 2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분진, 질소산화물, 대기오염을 자동측정할 수 있는 종합방제센타를 설치했다. 기상,대기오염측정은 물론 가스누출까지 방지할 수 있는 완벽한 시설이라는 점을 들어 이들 3사는 입주시 환경영향평가서를 통해 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전혀 없을 것이며 고용증대등 지역발전에 기여하게 될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가동 석달이 채 못돼 주민들은 ‘방독면을 달라 ‘잠을 자게 해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으며 공해반대책위원회까지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게 문제다”

완벽한 공해방지시설을 갖추었다는 공단, 그럼에도 공해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민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주민들은 공단측이 이 시설을 지속적으로 가동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완벽하지도 않다고 말하고 있다.
독곳리 공해대책위원회 김춘수 위원장은 “감시에 걸려봐야 기백만원의 벌금을 물면 넘어가지만 공해방지시설을 지속적으로 가동할 경우 연간 4~5백억의 예산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과연 돈버는 것이 목적인 기업들이 이를 지키겠냐”고 반문했다.
김위원장은 또 “분진피해를 막는 집진시설의 경우 집진률은 76%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24%의 분진은 그대로 방출되고 있으며 결국 완벽한 시설이라는 것도 이상론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오염물질 배출량에 대한 총량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법적인 문제점도 기준치는 넘지 않아도 주민들에겐 실질적인 공해피해가 가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이 악취,소음공해를 비롯, 공단주변 동,식물의 피해사례가 끊이질 않는데다 92년 2월 현대정유(당시 극동정유)에서 대형폭발사고가 일어나자 주민들은 대산3사에 환경영향평가를 강력히 요구했으며 3사가 용역비용을 대고 주민이 직접 선정한 서울대 환경문제연구소에서 조사에 들어갔다.

대다수 주민 이주대책 세워라

약 1년여에 걸쳐 진행된 이 조사에서 농작물과 인체, 어장등의 피해일부가 대산3사의 오염물질 배출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음의 경우 일반 농촌지역의 소음수준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주거생활에 영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해수에서 크롬, 납등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중금속이 표준해수보다 최대 10배~100배이상 높게 나타났다.
또한 호흡기 증상으로 ‘가래가 생긴다’거나 눈 및 피부증상으로 ‘가렵다’라는 공통된 증상은 대산3사로부터 5km 지역까지가 타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이 조사와 함께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주민들은 공단입주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얻는 것이 없다'는 대답이 55%에 이르렀으며 잃은 것이 무엇인가는 질문에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 농산물 또는 어획고 감소, 위험에 대한 심리적인 불안감등 부정적 응답이 80%에 다다랐다.
또 환경오염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대다수의 주민들이 주민이주를 꼽은 반면 피해산출 및 보상은 불과 5%인 것으로 조사돼 절박한 심정을 드러냈다.
조사가 진행되던 와중에서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나프타 유출사고로 대산면 일대 어류와 패류가 몰살했고 삼성종합화학에선 안전핀 고장으로 또 한차례의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미 버려진 땅, 제2의 대산공단 없어야”

풍부한 어획고를 자랑했던 독곳리에서 현재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은 단 세가구 뿐이다. 공단이 들어설 때 지역개발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던 주민들은 황금어장을 잃고 지금은 전문지식과 노력부족을 이유로 제품포장이나 청소업등 공단의 단순노무직에 고용되어 있다.
화려한 구호에 가려진 개발의 일그러진 또 다른 모습을 주민들은 ‘예고도 없이 뻥뻥 터지는 공해에 시달릴대로 시달린 뒤에야’ 생생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고향이 싫어서가 아니라 살 수 없어서 떠나야 하는 ‘현대판 피난’이 유일한 살길임을 호소하고 있다.
대책위 김춘수 위원장은 “이 땅은 이젠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버려진 땅이 되었기 때문에 주민들도 이주대책이 세워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며 “이 지역외의 또다른 곳에서 제2의 대산공단이 더이상 생겨나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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