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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안사람, 나는 당신의 바깥사람 - 정남영(신평면 매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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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전의 당신을 보게 된 건 우연이었다.
봄바람이 거세게 부는 무료한 오후, 딱히 할 일이 없어 두리번거리는 내 눈에 빛바랜 사진첩이 비쳤다. 아무 생각 없이 펼쳤을 뿐이었다. 잘 익은 수박이 갈라지듯 묵은 소리와 함께 힘없이 펼쳐진 페이지. 거기에 46년 전, 부케를 안고 있는 당신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 어찌 20살의 당신이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는 내게로 시집와 뒤뜰에서 흑백사진을 찍은 20살의 당신과 한참을 마주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슈?” 방으로 들어서며 묻는 당신은 서리를 인 머리와 깊게 굴곡진 주름살이 가득한 66살의 늙은이다. 내가 아무 말 없이 20살의 당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당신의 시선 역시 사진으로 향했다. 그렇게 당신과 나는 46년 전의 당신과 나를 바라보며 무료한 오후의 한때를 보냈다.
1956년 11월26일 우리가 결혼할 때까지 나는 당신을 딱 한번 봤을 뿐이었다. 맞선 자리에서 선뜻 고개를 들지 못하던 당신. 그렇게 딱 한번의 만남으로 당신은 나의 안사람이, 나는 당신의 바깥사람이 되었다.
그로부터 46년이라는 반평생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의 결혼을 축복해주었던 신부님(사진의 정 중앙에 안경 쓰고 앉아계신 분)과 사진 속의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당신은 여전의 나의 하나뿐인 안사람으로, 나 역시 당신의 하나뿐인 바깥사람으로 이승에서의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정 남 영 / 신평면 매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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