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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 입력 2002.03.22 00:00
  • 수정 2017.08.10 17:21
  • 호수 411

바이더웨이 김은수 대표가 추천하는 <지성 동방삭>
제국의 기틀 확립한 동방삭, 소설적 묘미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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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용음
옮긴이 / 김은신
출판사 / 문학세계사
가 격 / 8,000원

김은수
바이더웨이 당진본점 대표
향토문화연구소 사무국장
본지 편집위원

제국의 기틀 확립한 동방삭,
소설적 묘미로 표현
2천년 시공 넘나드는 삶의 지혜 제공

화창한 어느 봄날, 한 젊은 선비가 종자 하나를 거느리고 세상을 주유하고 있는데 어디쯤 가자 동네입구의 가파른 언덕밑에서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울고 있는 연유를 물었더니 이 고개에서 넘어지면 3년을 못살고 저 세상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동네에서는 이 일로 인해서 초상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좀 멀지만 안전한 길로 돌아서 다니고 있지만 급박한 상황에선 위험을 무릅쓰고 고개를 넘다가 번번히 넘어져 3년을 못살고 죽는다는 것이다.
풀섶에 앉아서 곰곰히 생각하던 젊은 선비가 내게 이 언덕에서 넘어져도 죽지않는 비법이 있으니 동네 사람들을 죄다 불러오라 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모이자 젊은 선비는 언덕 위에 오르더니 두루마기를 허리에 둘둘 감고 다짜고짜 굴러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자, 내가 이 언덕에서 굴렀으니 앞으로 얼마나 살겠오” 사람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자 다시 언덕 위에 오른 선비는 연거푸 구르는 것이었다. “자, 내가 두번을 굴렀으니 6년을 살 것이오. 20번을 구르면 1갑자요. 열심히 구르면 삼천갑자인들 못 살겠소”
이 젊은 선비가 바로 그 유명한 삼천갑자 동박삭이 아니던가. 동방삭은 스스로 지은 이름인데 동방이란 성은 발해만 서쪽, 지금의 요서와 산동의 중간지역인 북경밑을 지칭했다. 당시에 중국인들은 이곳을 동방이라 했는데 일종의 변경지대였다. 여기에 고향을 두었다 해서 동방이란 성을 취했으며 삭이란 정월 초하루, 즉 삭일에 태어났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황제였던 한의 무제 때 사람으로 유교를 역대 왕조들의 통치이념으로 삼게 했던 동중서와도 동시대 인물이다.
원래 제와 노나라 지역은 우리 민족과 남서쪽에서 올라온 지나족인 중국민족이 혼재해서 살던 지역이다. 중국 최초의 문명인 하, 은, 주의 통치세력은 동이족이라는 설이 유력하며 이를 받침하는 사실로 송화강 유역의 갑골문이 은허의 갑골문보다 더 오랜 연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송화강 유역은 원래 우리 민족의 터전이다. 학계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삼황오제를 비롯한 공자와 동방삭도 동이족이라는 설이 정설은 아니지만 참고할만한 가치는 있다고 보며 이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는다면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용음은 영웅문으로 유명한 김용의 무협소설에 탐닉해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한 때는 생계수단으로 무협소설을 쓰기도 했다. 우리가 무협소설이란 말도 많이 들어 보았으나 이 책은 문협소설이란 장르구분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다소 생소하지만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문협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2000년의 시공을 넘나드는 삶의 지혜를 제공하고 있다.
정치, 군사,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동방삭은 한 무제를 보필하여 유방의 중국 통일 후 50여년간 불안하던 정국을 안정시키고 강권한 제국의 기틀을 확립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을 소설적 묘미를 통해서 표현해내고 있다.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방삭의 용기와 재치, 그리고 고매한 인격을 배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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