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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가볼만한 곳]전남 구례군과 경남 하동 사이

섬진강 따라 매화꽃 향기를 따라 지리산 뒷덜미에 흐르는 매화꽃 폭포 김태숙l승인2002.03.22 00:00l(4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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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마치 그것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절망에 빠진다. 중단되지 않을 고통, 그 희망없음이 우리를 더욱 견딜 수 없게 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고통의 시간은 어느날 기적처럼 지나간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을 허락하신다고 했다.
모든 것이 그처럼 흘러간다. 우리는 단지 그 흐름에 참여한다. 그것이 삶이다. 그러나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흐름에 잘 참여해야 한다. 흐름에 잘 참여하기 위해 우리는 빠져버리지 말아야 한다. 고통이 올 때 고통 속에, 사랑이 올 때 사랑 속에, 위험이 올 때 위험 속에, 기쁨이 올 때 기쁨 속에 빠져버리지 말아야 우주와 함께 우리의 작은 삶도 흘러갈 수 있다.
자각, 혹은 통찰력이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전부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흐름 속에, 과정 속에 있다는 자각이야말로 그것이 머지않아 지나갈 것임을 알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이 절망에서 희망을 일으켜 주는 정직하고 유일한 처방이다. 그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한발짝 물러서라고 명령한다. 거리를 두고 바라볼 것을 우리에게 충고한다.

우리가 섬진강변의 매화마을을 찾아간 것은 3월 중순의 어느날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고통이 최고조에 달해 무르익은 후 뜨거운 김을 식히기 위해 막 채롱에 받쳐 식탁에 올려놓은 감자같은 때였다. 여기서 우리란 당진사진동우회와 나를 말하는데 그들의 촬영여행에 객쩍게 끼어들은 내가 감히 우리라는 말을 쓴 것이 어쩌면 외람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명분은 봄꽃 소식 취재였고 보다 은밀한 동기는 ‘나로부터 거리두기’와 ‘열 식히기’였다.
<의미가 어떤 사건 주변에 축적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시 나는 너무 강한 느낌으로 인해 마비되어 버렸다.... 그러나 사실 내 영혼이 몸 안과 밖을 넘나들고 분주함과 도망치고 싶은 감정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동안.... 차곡 차곡 쌓인 일들이 소정의 과정을 거쳐 어두운 시간을 깨우침의 시간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엘렌 라콘테가 쓴 “헬렌 니어링, 또다른 삶의 시작” 중에서)>.
이즈음 읽은 책의 이 대목은 뜻밖의 강력한 괴로움에 처한 우리의 심정을 너무나 잘 묘사한 것 같다.
우리는 한 가지 시련을 두 번 겪는다. 한번은 시련 자체로, 또 한번은 그것에 대해 반추하며 의미를 깨닫는 과정으로.

우리는 서해안 고속도로의 하행선을 달렸다. 너댓시간을 달리자 지리산의 우람한 품에 안긴 섬진강에 다다랐다. 단 한번도 와본 적이 없는 섬진강은 김용택 시인의 유명한 시 ‘섬진강’ 덕분에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하기야 우리의 금수강산이 어디 간들 낯설까 싶다. 전생을 따져도 몇번에 걸쳐 다녀갔을지 모르는 곳이다.
전남 구례군 매화마을을 찾아간다는 것이 강 건너 경남 하동 쪽으로 빠져 깊숙이 들어간 탓에 강을 거슬러 한참을 달린 후에야 다리를 만나 간신히 구례로 빠져나왔다.
가물어 군데 군데 강바닥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섬진강은 굽이굽이가 아름다웠다. 허나 섬진강의 아름다움은 저 홀로 빚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끊어질 듯 이어진 지리산의 고매하고도 의연한 자태가 섬진강에 드리워 그 아름다움을 만들고 있었다. 강에 비친 산, 산을 비춘 강, 이것이 섬진강이 뿜어내는 진한 향기의 원천이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같은 토끼풀꽃,
숯불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환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걸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환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섬진강1, 김용택 시 "

길을 잘못 들어 얻은 소득 가운데 또 한가지는 박경리씨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었던 경남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 복원지를 볼 수 있었던 점이다. 마음만 열어놓으면 ‘잘못’과 ‘잘’의 경계를 넘어 우리는 오히려 뜻밖의 체험으로 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할 수가 있다.
연인처럼 나란히 가는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지리산과 섬진강을 애인처럼 끼고사는 이 근처 사람들이 부럽기만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산 아미산의 아름다움 찾기’가 숙제처럼 여겨졌다.
얻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강 건너편에서 본 매화마을의 만발한 매화꽃은 산허리에서 쏟아지는 폭포에 다름 아니었다. 산허리를 뒤덮은 하얀 물보라.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미소짓게 한 귀한 소득이었다.
한때 밤나무 단지였다는 구례군 ‘매화마을’은 TV 드라마 ‘허준’ 방영 이후 매실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매실재배단지로 바뀌었다는 일설이다. 우리가 찾아간 ‘참매실농원’은 그중에서도 제법 잘 가꿔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간 날도 사람들로 북적댔다. 그만큼 넓고 지루하지 않은 많은 길들을 가지고 있는 농원이었다. 매화폭포는 산굽이마다 왈칵 왈칵 쏟아지고 있었다.
이른 아침 다시 찾았을 때 매화농원은 이른 봄의 신선함으로 겨울잠에 빠진 오감을 깨웠다. 아직 차가움이 배인 대기와 이른 아침 햇살의 따스함, 그리고 산허리에 수북히 쌓인 매화눈꽃 속에서 우리는 이전에 결코 만난 적이 없는 ‘제5의 계절’을 만끽했다.
카메라를 잡고 어디를 향해도 매화꽃 너머 아스라히 물빛 맑은 능선을 가리지 못하는 지리산. 그것과의 끝없는 조우. 아직 새벽 운무에 싸인 섬진강의 먼 눈빛. 간밤의 슬픈 잠과 괴로운 꿈 모두 푸른 아침이 되어 먼 발치로 물러나 앉아 있었다.
지리산 뒷덜미에 지천으로 핀 매화. 봄바람에 조금씩 쏟아내고도 여전히 지천인 꽃사태. 아직도 더 많은 봉우리에 만개의 기다림을 담고 입을 다문 송이송이.
춥고 황량한 겨울 산에서 여린 ‘겨울눈’을 단 채 외롭고도 당당하게 겨울 바람을 견뎌온 매화꽃 송이마다 찬란한 봄빛의 월계관을 영광스럽게 걸어주고 싶었다. 그들의 잔치, 봄의 잔치는 우리의 잔치, 생명의 잔치였다.
김태숙  tskim@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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