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대(webmaster@djtimes.co.kr)
동네의 천주교 신자들이 십시일반 헌금해서 스스로 지은 공소(기도처). 동떨어진 동네에 기도처가 생긴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지치는 줄도 모르고 찰칵, 우연히 사진을 찍었었다. 뒷산의 나무를 베어 우리들 손으로 직접 지은 것이기에 이 곳에 모여들면 신자들의 얼굴엔 기쁨이 충만했다. 그렇게 20여명의 신자들이 모여 기도문을 낭독하고 우리들에게 이러한 기쁨의 공간을 마련해주신 하느님을 축복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폐허로만 남아있을 뿐. 남다른 애착이 담긴 곳이기에 휑뎅그렁한 공소 앞을 지날 때면 마음이 쓸쓸해지곤 한다. 어느새 도로가 뚫려 당진성당에 나가게 되었으니 더 이상 공소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공소이지만 내겐 그 어느 큰 교회보다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공소를 완공한 그해 크리스마스에 아내와 네 딸을 데리고 당진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었다. 나의 세례명은 안드레아(사진의 맨 좌측), 아내의 세례명은 안나(사진의 오른편, 면사포를 쓴 사람), 막내딸은 데리사(내가 안고 있는 아이), 그 밖에 큰 딸(사진의 정 중앙, 분홍색 코트), 둘째 딸(사진의 왼편, 파란색 상의), 그리고 그 옆에 단발머리의 셋째 딸. 네 딸들이 벌써 어엿한 어른이 되었으니 어느새 20년이나 흐른 옛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