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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불행들을 버티고 살아가는 장정순씨(정미면 봉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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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죽음, 큰아들의 사고, 둘째아들의 신장암

정정순(54, 정미면 봉생리)씨를 만난 날은 이상하게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다. 당진읍 내의 어느 카페에서 차 한잔을 시켜놓고 장씨를 기다리는데, 저 혹시 이기자님……, 돌도 안 지났을 것 같은 갓난애를 업은 깡마른 장씨가 머뭇머뭇 물어왔다. 그녀의 손녀딸 구슬이라 했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항상 업고 다닌다고. 포대기에 둘러싸인 채 장씨의 등에 꼭 붙어있는 일곱 달 된 구슬이는 뭐가 좋은지 하얀 배냇니를 드러내며 활짝 웃어보였다.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깊은 한숨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의 바짝 마른 몸 어디서 저런 무거운 한숨이 쏟아지나. 탁자에 놓여있던 쟈스민 차의 향기는 이내 그녀의 무거운 한숨소리에 짓눌려 가라앉아 버렸는데...
그녀에게 닥친 첫 불행은 큰 아들의 교통사고다. 여느날처럼 다녀오겠다고 차를 끌고 나간 아들은 교통사고를 당해 심장과 간이 파열됐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아들은 수년간의 병원생활을 거친 후 그녀의 품에 돌아왔다.
큰아들을 품에 안은 기쁨이 채 사라지기 전 남편에게 걸린 몹쓸 병이 그녀의 맘 한쪽을 송두리째 잘라냈다. 1996년 동네 사람들과 함께 건강진단을 받으러 갔다가 신장암이라는 거짓말 같은 소식을 안고 온 남편. 그해 7월 바로 수술했으나 1년을 병상에 누워있던 남편은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그로부터 2년 후 불행은 마치 그녀의 깡마른 몸 어딘가에 아직도 뺏어갈 살점들이 남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본격적으로 그녀를 무너뜨렸다. 휴가 나온 그녀의 둘째 아들이 부대에 복귀하기 전날 피오줌으로 변기통을 빨갛게 물들였다. 6개월여가 지나 의가사제대한 아들이 민간병원에서 진단받은 병명은 선천성 신장암. 그녀의 남편을 숨지게 했던 똑같은 병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둘째 아들의 몸에 뿌리박고 있었던 것이다.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 아들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수술... 다행히도 수술이 잘 끝나 몇 개월 후 퇴원했으나 암세포의 뿌리는 끝없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
현재 무균실에 입원해 있는 그녀의 둘째아들은 어머니의 마른 몸과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병원비에 더 마음이 아프다.
“밤에 단 잠잔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너무 답답해서 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열 두번이 넘어요. 그런데 이 세상에 나 하나 없어지면 남은 식구들에겐 너무 잔인하죠. 누구를 기대고 어떻게 살겠어요.”
정미면 새마을 면회장과 소소봉사회 및 우정회 등에서 그녀가 남모르게 타인에게 베푼 봉사는 가혹한 불행들로 되돌아 왔다. 그녀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던 것일까.
또다시 까르르 웃는 구슬이. 구슬이에게 젖병을 물려주던 그녀의 붉어진 눈은 끝내 눈물을 쏟고 만다. 그녀와 그녀의 식구들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들은 그녀의 불행으로부터 멀리 비켜서 있는 타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까르르 웃는 구슬이와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세상이 그렇게 너무 잔인하지 않다는 것, 그것만이라도 증명해줄 수는 있지 않을까, 하고.
■자그마한 도움들을 기다립니다 : 계좌번호:310185-02-024438(우체국), 예금주:장정순

이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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