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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을 만나다] 김성호 부천주민공동체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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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공동체운동,사회운동의 새로운 지평

김 성 호

부천주민공동체 운동가
부천 심곡본동 거주
신평면 금천리 출신



김성호씨는 느슨해진 사회운동의 대안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주민공동체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주민공동체운동’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 사회를 하나씩 바꿔나가기 위한 운동으로,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지역 주민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여기에서 주민공동체운동의 힘이 드러난다.



독재와 군사정권의 폭정으로 얼룩졌던 80년대, 그 험난했던 격랑의 시대에 힘없는 자들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고 끈질기게 싸워왔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기 위한 발걸음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보이는 곳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일궈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 한 가운데에 김성호(42)씨가 있다.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김성호씨는 신평면 금천리 출신으로, 현재 부천시 심곡본동에서 ‘풀빛그림터’라는 화실을 운영하면서 ‘주민공동체 운동’을 벌이고 있다.
‘주민공동체 운동’은 행정력이나 시민운동 차원에서는 할 수 없는 세부적인 사회개혁들을, 자발적이고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주민모임을 통해서 해법을 찾아보고자 하는 운동이다.

김성호씨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농번기 때는 집안일을 돕느라 결석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김씨의 집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아 다른 아이들보다 남는 시간이 많은 편이었다. 그림에 대해서 타고났다던가 남들보다 잘 그린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그는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그렸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김성호씨가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있었던 것은 큰 형의 덕분이기도 하다. 큰 형이 군대에서 휴가 나올 때면 김씨를 위해 종이를 100장씩 사다 줬다. 김씨는 그 종이에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큰 형은 다음 휴가 나올 때도, 그 다음 휴가 나올 때도 종이 100장을 사가지고 왔다.

김성호씨는 신평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평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던 짝을 따라서 미술부에 들어갔지만 이때까지도 그는 미대에 가겠다는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평소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김씨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게 된다.
미대에 들어가서도 정작 김씨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사회적 현실이었다.
학생운동이 불붙기 이전, 절대권력의 억압과 폭력에 분노한 양심적 시민들이 ‘민주화’라는 이름을 걸고 떨쳐 일어날 때, 한참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도 자신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조직적으로 분출할 출구를 찾고 있었다.
80년대 중반 학생운동이 점차 조직의 틀을 완성시키고 있을 무렵, 미술대학 학생들도 ‘청년미술공동체’를 시작으로 점차 조직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여기에 김성호씨도 함께 동참하면서 “내 그림이 쓸모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생각을 시각화시켜 알릴 수 있는 포스터나 대형 걸개그림들은 미대가 아닌 다른 학생운동권에서는 좀처럼 소화해 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하룻밤을 새면 거대한 걸개그림이 완성되고, 이런 일들이 작은 힘이지만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김씨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 일에 몰두했다.

이외에도 김성호씨는 여러 작은 모임들에 동참해 사회 변화를 위한 노력을 했으며 졸업 후 89년도에는 ‘흙손공방’이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 부천, 인천을 무대로 미술운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현재 부천에서 ‘풀빛그림터’라는 조그마한 화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작업을 하고 있는 김성호씨는 느슨해진 사회운동의 대안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주민공동체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주민공동체운동’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 사회를 하나씩 바꿔나가기 위한 운동으로,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지역 주민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여기에서 주민공동체운동의 힘이 드러난다.
이 운동은 복지, 환경, 교육, 문화 등 각 분야를 포괄해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도시미관, 주차장과 보행로 확보, 아동 인권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김성호씨는 작은 일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는 해법을 학교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부천남초등학교에서 학교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학교에는 이미 학부모들에 의해 위원회급 조직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일이지만 큰 단체에서조차 손대지 못하는 일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가까운 예로 아이들의 보행로 확보나 주차문제, 무의탁노인과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자원봉사, 아동인권에 관계된 일 등은 시민단체에서 하기에는 역부족일 뿐더러 행정력을 동원하기에는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든다. 이러한 일들을 학교 어머니회에서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시민단체는 한 사람이 여러 단체에 중복되어 소속되어 있고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여서 이런 일을 해내는데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 주민공동체 운동은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 시민운동은 실천단계에서 주민공동체와 같은 작은 모임과 결합해야만 그 실천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김성호씨는 재작년에 만들어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주민자치센터의 실태에 대해서 비용만 들 뿐이지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혜택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동안 소위 완장 차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민자치센터를 차지하고 있어 시민단체에서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1년 정도 운영을 하다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하나 둘 그만두게 되었죠. 그 빈자리에 우리가 들어갔습니다.”
평생학습이라는 명목 하에 주민을 상대로 무료강좌를 여는 곳은 부천만 해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고 한다. 이 무료강좌의 문제점에 대해서 김성호씨는 이렇게 지적했다.
“주민들에게 좋은 강좌를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조금을 받기 위해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강의 할 역량과 인력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고 강의내용이 부실할 뿐더러 어디가나 다 비슷한 내용들 뿐이어서 본래의 취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김성호씨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주민강좌의 모델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산만한 강좌들을 통폐합하고 여러 분야에 걸친 다양한 내용의 강의를 준비하는 등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김성호씨는 조그만 주민조직이 할 수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일본 새역사교과서 반대운동에 생각이 미쳤다. 김씨는 각 언론매체에서 이 일에 대한 사실보도만 했을 뿐 이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해 민족감정만 일으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김씨는 이 일을 위해 일본에서 새역사교과서 반대운동을 벌이는 사람들과 연대할 생각으로 이같은 생각을 일본의 가와사키 현에 통보했는데 의외의 반응이 나타났다. 가와사키 현의 공무원 노조 등 12개 단체가 이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혀온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10명 정도의 모임에서 시작했으나 일이 이렇게 되자 처음의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부천 시민단체의 대표성을 띠고 일본으로 가게 되었다.
가와사키 현에서는 무려 500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였다고 한다. 이는 지문날인 철폐집회 이후 최대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박3일의 시위 일정 동안에 오까야마에서도 이 소식을 듣고 자기 지역에서도 새역사교과서 반대투쟁을 하겠다며 와달라는 제의가 왔다. 그 곳에서도 2박3일 동안 시위를 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작은 모임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잠깐동안의 토론을 위해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차를 타고 올 만큼 일본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한 모임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세계화에 대항해낼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작은 주민조직입니다.” 일본과의 새역사교과서 반대투쟁을 벌인 이후 해마다 10회 정도의 왕래를 하고 있다는 김씨는 현재는 일본과 주로 교류하고 있지만 앞으로 동남아시아와 네팔 등 더 넓은 곳으로 눈을 돌려 풀뿌리 주민조직 간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4번의 개인전과 수십 번의 회원전을 가진 바 있는 김성호씨는 그동안 자신이 해 온 작업의 주 테마가 ‘상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내년 쯤 내포문화에 관한 작업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충청도 중에서도 가장 충청도다운 곳인 내포문화권(당진, 서산, 홍성, 예산, 태안 등지)에 대해, 전에는 참 특성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 해주는 지형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고향에 대한 애정을 내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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