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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26 19: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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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경노당 가겠지만
내손으로 버는 동안만큼은 열심히 도울거요”

칠전 취재를 위해 당진경노당에 갔을 때였다. 할아버지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누군가 문을 빼꼼이 열더니 흰 봉투 하나를 들이밀고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들이 느닷없이 혀를 끌끌 차는 것이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여. 매달 저렇게 올라오기가 어디 쉽담.”
 그 분은 매달 그렇게 경노당 살림에 보태쓰라고 얼마씩 보내온다고 했다. 그것도 언제나 직접 가지고서 말이다.

송희창(64세)씨

 할아버지들이 일러준 주소를 찾아 시장으로 갔을때 마침 송아저씨는 다친 손주녀석을 데리고 병원에 막 다녀온 뒤였다.
 방문한다고 전화했을 때부터 별로 반기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몰래 하고 있는 일이 들통난 사실에 조금은 못마땅해 하는 눈치였다.
 당진읍이 고향인 송아저씨는 열 네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으로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20대 중반에 어머니마저 여읜 송아저씨는 혼자 힘으로 두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자신도 결혼을 했다.
 부모를 일찍 여읜 탓에 서운함과 외로움은 그래도 덜 재간이 없더란다. 지나는 노인을 보면 죄다 아버지 같고 내 어머니 같더라고 한다. 그러던 중에 우연한 일로 송아저씨는 아주 작은 한가지라도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5년전 어느날, 석문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오던 길에 아저씨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인을 보았다고 한다. 무심코 지나치다가 ‘아니다’ 싶어 되돌아가 물어보니 배가 아파 병원에 가려는데 너무 아파서 버스 서는데까지 걸어갈 수 없어서 그렇게 앉아있다고 노인이 말하더란다.
 젊은 자녀들은 서울로 나가고 없고, 할머니하고 읍내까지 같이 다녀오자니 둘이 너무 힘들 것 같아 혼자 나왔다는 할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듣고 송아저씨는 그길로 곧장 할아버지를 태우고 병원으로 달렸단다. 진료비를 내는 자신에게 당신도 돈이 있다며 펴보이는 할아버지 손에 백원짜리 동전 몇개가 놓인 것을 보고서 그뒤에도 두고두고 마음이 편치 않더라는 송아저씨는 경노당에 얼마씩 생활비를 보태주기로 마음먹었다.
 “마음같아서야 뭐든지 다 해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나도 바쁘고 그리 넉넉지도 않으니 별 수 없지요.”
 송아저씨는 당진경노당 말고도 너댓군데 더 돕고 있는게 틀림없었지만 그게 어딘지 극구 가르쳐주질 않았다.
 벌써 5년째 경노당 걸음을 계속하고 있는 송아저씨는 알고보니 의용소방대 출신모임인 소우회의 2대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요즘도 길을 가다보면 마을마다 도로 가까이에 있는 노인정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주머니를 털어야만 마음이 편하다는 송아저씨. 따지고 보면 자신이 노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이 자신을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로서로 도우면서 더불어 사는 것이 세상이예요.”
 인터뷰 도중에도 분주하게 일하는 작은 체구의 아저씨. 이제 곧 할아버지가 될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느껴지는 독특한 생기를 발산하는 사람.
 “사실 나도 언제 그일을 그만두게 될지 알 수 없어요. 인제 일에서 손 놓게되면 나도 경노당에나 다녀야 될 걸 뭐. 다만 내가 내손으로 돈을 버는 동안만은 도와줄 수 있을 때까지 도와줄 겁니다.”
 이제 사회에서 노령인구로 치는 65세를 코앞에 두고, 이날까지 성실하게 임해온 일에서 손땔 준비를 해야하는 송아저씨.
 부모 일찍 잃은 쓸쓸함과 외로움을 8남매 키우면서 많이 메우긴 했지만 송아저씨는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썰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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