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장애인 권익 처음 일으킨 사람 - 김기두 장애인협회 직전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0년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김기두(40세)씨는 당진의 장애인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90년 9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당진지회 지회장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그 이듬해 발기인대회, 창립대회를 거쳐 장애인을 하나의 인간집단으로 조직시키기까지 '장애인 권익의 사각지대'이던 당진지역에 그가 뛰어다닌 지난 4년간의 발자욱은 아직도 역력히 남아있다.
 다리를 저는 사람, 한 손 또는 한 팔이 없는 사람, 숫제 걷거나 앉을 다리가 없는 사람, 안 들리고 안 보이고, 심지어 전신장애, 정신장애를 가진 수많은 이웃들이 주위에서 한가지씩 더 큰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들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갖은 편견과 천시로 그들을 대해온 것이 비장애인들이었다. 대부분 똑같이 깨끗한 영혼과 육신을 갖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김기두씨 역시 두 살때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다리 저는 장애인 취급을 받지 않고 살 사람이었다. 두 살 때 2m 높이의 난간에서 떨어져 상처를 방치해두는 바람에 영영 한쪽 다리 신경이 살아나지 않아 그리 된 것이었다. 신경이 네 군데나 끊어지고 140군데나 수술했다는 김회장은 남들보다 훨씬 늦은 11세가 되어서야 고대국민학교에 입학했다. 2학년이 될 때까지 누님이 학교를 데려다 줬지만 3학년이 되면서는 혼자서 학교를 다녔다.
 "지금도 그 당시 내 책보를 들어다 주고 자전거로 태워다주던 친구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는 김회장은 명랑하고 적극적으로 학창시절을 보냈으나 17세에 기술을 배우려고 전국을 떠돌던 끝에 젊은 시절 한때 갑자기 삶에 회의를 느꼈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장애자기능경연대회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그는 거기서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 81년 제1회 전국장애자 기능경연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보건사회부 장관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행사의 전야제와 송별회에서 본 장애인들의 모습이 너무 처참했습니다. 엄청난 장애 속에서도 웃고 뛰는 장애인들을 보니 저의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내 인생은 그때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맞선을 보면서 다시 새삼 장애인임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던 그는87년 어느 신부님의 주선으로 같은 장애인인 지금의 부인과 만나 결혼하고 당진에 VIP양복점을 냈다.
 그는 장애인협회를 꾸리기까지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장애사실을 숨기려는 부모와 장애인을 사칭해 물건을 강매하는 집단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약하면서도 벽에 부딪칠수록 강해지는 성격과 장애인의 권리회복은 장애인 자신의 몫이라는 절박함 때문에 그는 1천장이 넘는 초청장을 직접 써가며 협회창립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동안 정책부재였던 '장애인 복지'가 많이 나아졌다는 그는 아직도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에서 제도적으로 소외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울러 장애인 역시 더 이상 위축되지 말고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