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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중년 넘보는 시인 지망생의 괴짜같은 홀몸살이 - 신평면 신송리 허권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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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평면 신송리에서 9대째 살고 있는 허권섭(44세)씨. 9대째라고는 하지만 부모님 여의고 형제들이 다 도시로 나간 채 홀홀단신 집을 지키고 있다.
 보통 이 나이면 중학생 학부형쯤 될테지만 그는 여태 홀몸이다. 스스로 '책과 결혼했다'는 허씨는 농사짓는 틈틈이 책을 벗 삼으며 살아왔다. 농사라고 해야 혼자 힘으로 하려니 그리 많지도 않고 게다가 요즘 같은 농한기로 치면 농사짓는 틈틈이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책 읽는 틈틈이 농사를 짓는다고 해야 옳겠다.
 젊은 시절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다 그는 78년이 되던 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서울생활도 각박하기만 하던 때였다. 게다가 스물두살 때부터 소월의 시를 읽으며 불현듯 깨달은 자신의 예민한 시적 감수성이 유신정권 말기 혹독했던 근로조건을 견디기 어렵게 한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원래 타고난 반골기질에다 워낙 억압적이었던 당시의 정치상황, 쐐골이 바지게 일해도 빚만 느는 고질적인 농업정책의 병폐가 막 고향에 내려온 그를 자연히 농민회 가입의 길로 이끌었다.
 "뭐 대단한 뜻은 아니었슈. 앞장을 섰던 것도 아니구. 그저 옳은 편에 서고 싶어서였지"
 그러나 동기가 어쨌든 그는 그때부터 최근까지 전국단위나 지역단위 집회에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괴짜같을 정도로 열정적인 성격에다 이왕 결심한 일에는 제 몸을 아끼지 않는 외곬수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무자비할 정도로 막무가내였던 권력의 횡포에 대항하는 80년대식 그의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순수하고 마음 여린 시인 지망생이다.
 신춘문예에 수차례 도전해 보기도 하고 번번이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시에 대한 열망 하나로 이 세상을 버텨나가고 있다.
 "그때도 매한가지였슈. 세상에 거꾸로 된 것은 하도 많은데 내 힘은 없고, 연필로 대신 해보려고 했었쥬"
 이미 아버지 앞으로 쓴 시 60편과 어머니 앞으로 쓴 시 60편, 그 외 잡다한 제  생각을 쓴 시 60여 편이 있다는데 언젠가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시집을 한 권 내는 것이 그의 유일한 꿈이다.
 개발의 바람이 불어 신송리도 대부분의 집들이 개량되고 예전과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아직도 어씨의 집은 옛모습 그대로다. 마음이 심난하고 적적할 때 올라보는 뒷산과 함께 그 집은 나름대로 세상의 아픔을 껴안으며 힘겹고 외롭게 살아온 허씨의 오래된 보금자리다.
 "솔직히 이대로 버티기는 어렵네유. 세상도 조금은 달라졌고 혼자 시골에 있는 것이 보기 싫은지 형제들이 자꾸 서울로 오라고 성화를 내서... 그리고 역시 사람은 사람과 같이 살아야 되나 보네요"
 그러고 보면 장가가서 이 시골에 그냥 눌러사는게 허씨의 보다 중대한 꿈인 것이다.
 요즘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일도, 책도 손에 잘 안잡힌다는 그는 아직까지 일기를 쓰는 착실한 사람이기도 하고, 써놓은 일기를 아궁이에 집어 던지고 그것을 태운 불에 물을 데워 목욕한다는 괴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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