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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 한 세월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 우강면 박광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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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전국중증장애인 배우자 초청대회 특별상 수상

 

ꡒ어둠속에 두발을 묻어버리고 / 홀로 이 땅 어디쯤에 피어날 / 앉은뱅이 꽃처럼 / 높은 하늘만 올려다 보는 / 당신의 슬픈 눈이 싫어, 슬픈 노래가 싫어 / 나는 / 당신의 다리가 되겠다고 했지요ꡓ

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ꡐ제 1회 전국중증장애인 배우자 초청대회ꡑ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박광옥(48세)씨의 수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녀의 ꡐ앉은뱅이 꽃ꡑ은 바로 당진군 지체장애인협회 유재관(49세) 고문이다. 그가 하반신 마비의 중증장애인인 유재관 고문을 만나게 된 사연과 20여년을 부부의 연을 맺고 함께 살아온 얘기는 그야말로 절절하고도 애틋하다.

합덕까지 기자를 마중나온 박광옥씨는 자신이 쓴 수기제목이 책 제호로 선정된것을 무척이나 기뻐했다. 간호사로 일하던 그가 유 고문을 만난건 스물일곱살때. 우연히 의사선생님과 그의 집에 왕진을 가게 되면서부터였다.

유 고문이 서독에 광부로 취업했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1급 1호의 장애인이 되어 귀국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다.

ꡒ장애인이란 걸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구김살없는 사람이었어요. 항상 쾌활했고 자기주관도 확실했죠. 함께 있으면 늘 즐거웠고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ꡓ

남편과의 첫 만남을 얘기할 땐 누구나 그렇듯 박광옥씨의 얼굴에도 홍조가 떠올랐다.

점점 그를 찾아가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박광옥씨는 좀더 가까운 곳에서 그를 보살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사랑으로 바뀌었다. ꡐ어떻게 너 같은 자식을 두었는지 모르겠다ꡑ며 쓰러지기까지 했던 친정 어머니. ꡐ반드시 후회할테니 맘 고쳐 먹으라ꡑ던 친척들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남편의 고향인 합덕 내경리로 내려와 새로 지은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남들은 꿈만 같다는 신혼시절, 그러나 박광옥씨는 문밖 출입도 못하게 하는 남편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었다. 시장도 못가게 하고 옆집 아저씨와 얘기 한마딜 해도 언짢아 했었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만취될 때까지 술을 마셔댔고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것도 부지기수였다.

ꡒ3년간은 저의 못된 점만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래도 견뎌준다면 평생을 함께 살 수 있는 여자다, 뭐 그런걸 확인하고 싶었던 거죠. 좀 심하긴 했지만 역시, 제 눈이 정확했죠?ꡓ

능청스럽게 신부를 속썩인 이유를 말하는 유재관 고문, 그는 타고난 낙천주의자였고 누구보다도 자기감정에 솔직했고 충실한 사람이었다.

ꡒ고생시킨다는 죄의식 때문에 헤어지자고 말한 적 없느냐ꡓ고 물었더니 그는 주저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ꡒ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람인데 왜 그런 거짓말을 해요. 그런건 드라마 속에서나 하는 얘기죠ꡓ 

몇해전 박광옥씨는 위암수술을 받았다. 친정어머니와 친척들이 이혼을 하라고 했다. ꡐ그 몸으로 어떻게 남편을 돌보느냐ꡑ면서. 그러나 하루하루 그를 기다리고 있을 남편의 얼굴이 잠시도 눈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ꡐ얼마나 어렵게 이어져온 인연인데ꡑ 고난속에서 쌓아온 사랑인 만큼 그것을 지켜내야겠다는 의지도 강했던 것이다.

2개월뒤 그는 다시 남편에게 돌아왔다.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고 가까스로 활력을 되찾았던 그들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닥쳐왔다. 이번엔 남편이 대장암 3기라는 중병을 선고 받았던 것이다.

ꡒ눈앞이 캄캄했어요.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왜 그런 시련을 가뜩이나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건지, 온몸에 주렁주렁 링게르를 꽂고 수술실에서 실려나오던 남편을 봤을 때 눈물밖에 나오질 않더군요ꡓ

담담하게 얘기를 하던 박광옥씨의 눈에는 어느새 마른 눈물이 고여있었다. 어색해진 분위기가 부담이 갔던지 유 고문은 화재를 돌렸다.

휠체어농구단을 창설한 얘기며, 장애인올림픽때 성화봉송 주자로 뛰었던 얘기, 그리고 건강해지면 한라산 꼭대기까지 올라가겠다는 얘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고비라 했지만 그는 남편을 믿었다.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남편을 간호해주었다. 비록 아직도 늘 불안하지만 남편은 이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단다.

ꡒ이제 좀 맘 편히 쉬고 싶지 않느냐ꡓ고 했더니 오히려 그는 ꡒ한 남자의 아내로만 살아온 것이 아쉽다ꡓ고 한다.

ꡒ일하는 여성들이 부러워요. 남편 뿐만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ꡓ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내내 궁금했다.

ꡒ제가 너무 바보같이 살았죠?ꡓ 척추 환자용 차로 터미널까지 배웅을 해주면서 박광옥씨가 던진 말이다. 그냥 하는 말이라는 걸 그도 기자도 뻔히 알고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한 세월이었지만 수기에도 썼듯이 결코 후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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