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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일곱에 금산군수 거쳐

지금 막 내무부로 영전

대학시절 고시통과한 집념과 실력, 신사고의 소유자



지난 94년은 ꡐ사고ꡑ와 ꡐ비리ꡑ로 얼룩진 한해였다. 외형적인 성장만을 추구해왔던 근대화의 일그러진 모습이 낱낱이 드러났고 공직사회의 무사안일을 질책하는 소리도 높았다. 게다가 줄줄이 드러났던 세금비리사건에 국민들은 한결같이 ꡐ어디 그곳 뿐이겠냐ꡐ는 말을 할 정도로 불신감이 극도에 달했다. 그런 만큼 뭔가 새로운, 이미 굳어질대로 굳어진 공직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과감히 깰 수 있는 참신하고 깨끗한 공직자가 아쉬웠던 한해였다.

올해 치러질 단체장 선거에 많은 국민들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난 21일 우리고장 출신인 김동완 금산군수를 만나게 된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에 군행정 최고 책임자가 된 그는 능력 못지 않게 공직자로서의 윤리의식과 책임의식도 확고했다. 94년 사업 마무리로 바쁜 와중에서도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지방행정에 대한

전문적 식견 갖춘 엘리트


우강면 원치리에서 출생한 김군수는 우강국민학교와 합덕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는 인천에서 다녔다. 제물포고에 재학중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흥사단 아카데미 써클에서 활동했고, 늘 전교 10위권 안에 드는 우등생이어서 재인당진향우회의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76년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입학, 재학중에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졸업후 충남도청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지역개발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0여년간 충남도청 도정기획실 계장, 법무담당관, 도시과장, 문화예술과장, 개발담당관을 역임했고 지난해 7월 금산군수로 부임했다.

그가 남보다 월등히 빠르게 군수가 될 수 있었던 건 지방행정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과 치밀한 논리, 그리고 적극적인 업무자세로 도정의 굵직한 사업들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서해안 개발사업이나 서해안 고속도로, 보령댐건설, 백제문화권 개발, 93 대전엑스포 등등이 그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 사업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많은 시간을 할애해 얘기 한것은 무엇보다 행정철학과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에 관한 얘기였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자세 중요


ꡒ학내비리문제로 시위를 주도한 적이 있었어요. 단상에 올라가 연설을 하고 있었는데 교수님 한분이 멱살을 잡고 끌어 내렸어요. 그리고 웃도리를 들추어 옆구리 흉터를 보여 주시더군요. 4.19때 맞은 총탄자국이라면서...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ꡐ밀알이 되라ꡑ는 거였어요. 후대들에게 더이상 그런 사회를 물려주지 않으려면 네가 능력을 키워 잘못된 제도를 바꾸어 나가라는 말씀이셨죠ꡓ

유일하게 A+를 맞곤 했던 김군수를 항상 눈여겨 보던 교수였다.

김동완 군수가 공직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누구나 한가지씩  자기에게 가장 알맞는 일이 있듯이 김군수는 자신의 역할은 올바른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전여행을 떠났었다.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분수를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ꡐ왜 사는가ꡑ의 문제보다 ꡐ어떻게 사느냐ꡑ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ꡒ사는 건 조개껍질을 주워 목걸이를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해변가에 널려있는 조개껍질을 선택하는 건 내 자유지만 만들어진 목걸이의 가치는 다를 수 있어요. 어떤 건 비싼 가격에 팔리는 목걸이가 되기도 하고 전혀 값어치 없는 목걸이가 될 수도 있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ꡓ

삶에 대한 이러한 진지한 자세와 성실성은 그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관료화된 공직풍토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나갈 수 있었던 밑바탕이었다.


지배하는 행정이 아니라 국민을 존중하는 행정이 되어야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이전의 행정은 어떠했고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김군수는 이에 대해 ꡒ국민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행정이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한 행정이었다ꡓ고 잘라 말한다. 그러다 보니 계획은 거창하게 세우고 집행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 생색내기 행정이 되었던 것이라고.

ꡒ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민란이 많았던 나라예요. 그러나 정권을 탈취하기 위한 민란은 없었죠. 통치권자들만 잘하면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나랍니다. 이젠 지배하는 행정이 아니라 국민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이를 뒷받침 해줄 수 있는 행정이 되어야 해요. 또한 서로의 잘못을 탓하기만 하는 행정은 은폐를 낳습니다. 잘못을 관리하는 행정이 필요하죠. 그러기 위해선 공무원들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ꡓ

김동완 군수의 얘기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 새롭게 느껴졌다. 굳이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상식에서 벗어난 공직사회의  모습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던 때문일까?


그들의 표는 따로 있는 것


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일부 관료들이 나태해져 있는것 같다는 말에 김군수는 ꡒ이임식장에 가기전까지는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해야한다ꡓ고 말한다.

ꡒ행정은 개인이 하는 행위로 생각해선 안됩니다. 지위에 연연해 외형적인 업적세우기에 급급해 한다면 결국 역사왜곡을 초래합니다. 국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 형식적인 업적을 기억하겠습니까? 그건 개인의 명예욕일 뿐입니다. 행정은 역사를 일구어간다는 자세로 해야하는 겁니다. 역사는 영원한 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중요해지고 최선을 다하게 돼죠ꡓ

공무원의 선거개입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이전의 그릇된 모습에 대해서도 그는 단호하게 비판한다.

ꡒ농민들에겐 농민표가 있고 구두닦이들에겐 그들의 표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표를 억지로 관료들의 표로 만든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공무원은 절대 중립을 지켜야 해요ꡓ


전통문화를 살리는 것이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


「가장 지방적인게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세계적이다」

ꡐ인삼의 고장ꡑ 금산을 이끌어가는 김동완 군수의 지론이다. 그가 부임해 오면서 중점을 두었던 사업은 전통문화를 보존, 발굴해 내고 금산 인삼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가 건네주었던 명함에서도 이러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인삼이 찍힌 사진과 ꡐ최고의 건강식품 금산인삼ꡑ이라고 쓰인 문구. 그리고 구입 안내처의 전화번호까지 적혀있었다.

ꡒWTO시대에는 경제적 동물만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독특한 전통문화를 살리고 이를 통해 상품을 홍보하는 것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입니다ꡓ

김군수는 당진도 마찬가지로 전통문화가 단절되지 않도록 해야만이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ꡒ당진주민들을 위한 개발이 되려면 주민 스스로가 개발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ꡓ고 누누히 강조한다.


바랑하나만 메고

떠날 수 있는 자세로


인터뷰를 시작한 지가 꽤 오래된것 같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ꡒ직업공무원으로 평생 살겠다ꡓ고 한다.

ꡒ나라가 부강해지려면 지방행정이 잘 돼야해요. 지역의 힘이 클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이고 지방행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을 연구해 볼 생각이예요ꡓ

스님이 바랑 하나만 메고 떠날 수 있는 것처럼 김동완 군수는 앞으로도 사심없이 일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밀알이 되기 위해, 값어치 있는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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