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ꡒ당진의 문화유산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싶습니다ꡓ-일선출판사 장개충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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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초 비록 짧은 운명이었지만 ꡐ사회당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당사상 최연소 대변인이었고 사회당 최초로 서산쪾당진지구당을 창당하면서 그의 말대로 한때 당진을 시끄럽게 했던 사람, 바로 장개충(46세)씨다.

81년 사회당이 해체된 후 서울로 올라갔던 그는 지금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다. 경복궁 근처에 있는 그의 출판사를 찾아간 것은 지난 24일 토요일이었다. 당진에서 왔다는 말에 그는 금새 밝은 표정을 지으며 반가워했다.

ꡒ본래 성직자가 되려고 했었어요. 물론 지금도 그 길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해 남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르죠ꡓ

그의 고향은 고대면 항곡리이다. 5대째 천주교를 믿었던 집안이어서 가족들 모두 그가 신부가 되길 바랬다. 그러나 카톨릭 신학대에 재학중이던 76년, 그는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고 그로인해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성직자가 되고자 했던 꿈이 일시에 무너져 버렸던 것이다.

그가 정치권에 입문하게 된것은 ꡐ도서출판 물결사ꡑ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부터였다. ꡐ도서출판 물결사ꡑ는 그 당시 ꡐ신사고ꡑ를 지녔던 정치인들의 모임인 ꡐ물결동인회ꡑ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출판사였다. 얼마전 환경부 장관이 된 김중위씨나 현 민주당 유준상 최고의원, 조홍규 의원등이 물결동인회 사람들이었다.

11대 총선을 앞두고 일부는 민정당, 민한당으로 들어갔고 장사장은 80년도 사회당 대변인을 맡으면서 서산쪾당진지구당을 창당했다. 11대 총선에 출마하고자 했던 그는 ꡐ온갖 억압과 자금사정ꡑ 때문에 출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분단이후 현대정치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진보적 색채를 띤 어떤 정당도 이른바 ꡐ색깔론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반공이데올로기 앞에선 어떠한 논리도 통하지 않았던 게 그 당시 현실이었고 그것을 뛰어넘을만한 역량을 가진 정치세력도 없었다. 총선 후 사회당이 해체되면서 그는 40여일간 수감되기도 했었다.

ꡒ하나님의 성소가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성직자로서의 자질과 품성이 갖춰지지 않았었다는 얘기죠. 그리고 현실정치를 너무 몰랐었구요ꡓ

성직자와 정치인의 꿈이 좌절된 이유를 그는 이렇게 간단히 말했다.

그 이후 장사장은 서울에 올라가 출판일에 전념했다. 현실정치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고 출마도 못했는데 빚더미에 올라앉아 빚 갚기에 정신이 없었다. 지금 그가 경영하고 있는 일선 출판사는 86년에 설립했다. ꡐ이 땅의 얼굴을 새롭게ꡑ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ꡒ반품된 책을 트럭으로 당진군청 새마을 문고에 기증했던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당진쌀과 김을 잔뜩 보내왔더라구요.ꡓ

그는 책 많이 팔아 많은 돈을 벌었을 때 보다도 그때가 가장 기뻤다고 한다.

그동안 일선출판사는 200여권의 책을 발간했고 천상병 시집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과 동양철학 에세이 「산다는게 무언가」등 두권의 베스트셀러를 내기도 했다. 대형 출판사들이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펴고 있고 작년부터 저작권법이 생겨 저자와의 계약도 힘들어 지는등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쳐 있지만 일선출판사는 일관된 영업방침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ꡒ저희 출판사는 지속적으로 창작물 중심의 참신한 작품을 내놓았어요. 중복출판을 하거나 외국소설을 마구잡이로 번역해 출판하지 않았죠. 현재 전국 150여개 서점과 직거래를 하고 있고 좋은 작품을 내놓은 출판사로 인정받고 있어요ꡓ

그는 앞으로 일반 창작물보다는 우리민족의 역사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역사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진과 관련된 책도 내놓고 싶어했다. 당진의 유적지나 전설을 찾아내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보고 일제에 의해 왜곡된 마을이름을 우리것으로 다시 복원해 내고 싶다고.

ꡒ당진이 본래 충절과 예향의 고장이었어요. 예술가도 많았구요. 책자를 통해서라도 당진의 문화유산을 되살려 보고 싶어요.ꡓ

선거때 진 빚 때문에 고향 땅을 팔아버려 지금은 산소터만 있지만 그는 여전히 당진을 그리워하는 당진사람이었다.

ꡒ백평짜리 텃밭 딸려있고 대청 넓은 빈 집 하나 알아봐 주세요ꡓ

헤어지면서 인사말 대신 그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던진 말이다.        <이명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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