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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건설 이명천(47세)회장

 

대평건설의 회장이자 대평장학회의 회장이기도 한 이명천(47세)씨는 이미 6년전부터 고향의 후학들을 위해 장학사업을 해오고 있는 출향인이다. 아니, 비록 사는 집은 서울에 있지만 일주일에 적어도 한두번은 꼭 고향에 내려오고 있으니 좧반 출향인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태어난 곳인 합덕읍 운산리에서는 막내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이씨는 신촌국민학교와 합덕중학교를 졸업하고  흔히 그렇듯이 인천으로 유학을 갔다. 거기서 인천공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 5년 가까이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했다.

그가 ꡐ건축ꡑ을 선택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영화 ꡐ벤허ꡑ나 각종 영상물을 통해 로마시대의 고전건축양식을 보며 종합예술로서의 건축에 매료되어 건축사에 길이 빛날 작품하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표현대로 ꡐ건축ꡑ에 있어서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깊었다. 훌륭한 미술작품으로서의 ꡐ설계ꡑ를 직접 건물로 짓는 일로 바꾸는 데에는 돈이 필요했던 것. 그래서 그는 84년경부터 본격적으로 건축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주로 인천쪽에서 아파트, 단독주택, 상가등을 지어왔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성격답게 회사명도 좪대평좫이다.

ꡒ대평이라는 이름에도 그만한 내력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영토를 넓게 확장했던 고구려 시대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중의 하나로 중국의 옛 고구려 촌에 좧대평좩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대평이라는 명칭에는 적극적이고 호탕한 고구려인의 기질, 즉 우리민족의 새로운 정서와 세계적인 번창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ꡓ

이회장에게는 고향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해 준 한가지 계기가 있었다. 89년으로 기억되는 해의 스승의 날, 고향의 은사님을 모시고 서울 롯데호텔에서 사은행사를 가졌다. 이날 오신 분들 중에는 작년에 당진상고 교장으로 퇴임한 이석우 선생도 계셨다. 이석우 선생은 당시 순성중 교장으로 계셨는데 자신이 합덕중 재학시절 담임을 맡으셨었다.

ꡒ그날 스승님께서 중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이만큼 자리를 잡았으니 고향의 어려운 후학들을 위해 장학사업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요. 저도 그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등록금이 없어 졸업장을 못 찾아가는 학생들이 한 학교에 5~6명, 군 전체에 20~30명은 족히 된다고 하더군요ꡓ

이날 스승의 깊은 한마디 충고가 결국 이 회장의 진로에 구체적인 변화를 제공한 계기가 된 셈이었다. 그러나 똑같은 말을 열사람에게 한다고 해서 열사람에게 똑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이회장에게는 이회장 나름의 동기가 있었다.

ꡒ저는 원래 신촌국민학교 20회 졸업생인데 졸업할 때쯤 아버님이 앓으시는 바람에 중학 입학금이 없었어요. 입학성적 2등까지는 면제됐지만 그때 제가 5등밖에 못했죠. 1년후에 21회 졸업생과 함께 중학에 뒤늦게 입학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 당시 쓰라린 경험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ꡓ

이런 사정때문에 이회장은 자신이 어렸을 적에 겪었던 고통을 겪고 있는 후배들에게 선뜻 장학금을 내놓게 됐다.  주위에서 더러 ꡐ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ꡑ는 반문도 있었지만 89년 순성중의 15명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한 것을 시작으로 매해 고향후배 50~60명씩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장학금을 지급해 주던 중학생이 고교로 진학함에 따라 그 학생들만 줄 수 없어 한두명씩 늘기 시작한 것이 93년에는 무려 118명으로 늘엇다. 그때는 기둥뿌리가 흔들릴 지경이었다고 농담섞어 이회장은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회장은 대학재학시절 적십자활동을 하며  전국 대학적십자 학생회 연합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ꡒ6년 됐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고향이 나를 낳고 키우고 먹여줬으니까 나도 이곳을 위해 할만큼은 해야죠. 장학회도 97년도 쯤에 별도의 재단법인을 만들어서 독립시키고, 적십자사의 도움을 받아 우리지역의 고질병이나 심장병, 결핵환자도 구제하고 싶습니다ꡓ

심장병 치료의 권위자인 백병원 이신형박사가 이석우 선생님의 아들이라고 귀띰해주면서 이회장은 ꡐ성수대교사고 이후 감리제도가 강화되어 부실공사는 크게 줄어들 것ꡑ이라고 건축도다운 한마디를 한다. 그러나 결국 부실공사는 업자 자신 뿐만 아니라 감시감독하는 공무원들의 원칙적이고 책임있는 자세에 의해서도 좌우된다고.

건설업은 이미 많은 부분 동생에게 넘겼으며 장학사업을 좀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게 이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현재 신평이씨 당진군 화수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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